델리스파이스를 들으며 청춘을 뱉는다 2013~2016 음악일기


L형이 잠도 체력이 있어야 잘 수 있다고 말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틀린 말이 아니다. 너무 힘들면 쉽게 잠들지 못하고, 일처럼 건성으로 잔다. 지독한 숙취 때문에 새벽에 깼다. 시계를 보고 싶은데, 머리와 속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이다. 이불 속에서 몇 바퀴를 뒹군다. 몸을 겨우 진정시키고 냉장고로 기어가 물을 마신다. 내 다시는 술을 먹지 않으리, 라는 다짐은 허언이기에 조금만 마시자고 약한 다짐을 한다.

다시 방으로 벌레처럼 기어들어온다. 이렇게 살아야 할까. 이렇게라도 살아야지. CD장을 헤맨다. 며칠을 작정했던 델리스파이스의 다섯 번째 앨범 『Espresso』을 켠다. 모든 걸 게워낸 세상에 청초하고 말끔한 모던락이 흐른다.

델리스파이스의 『Espresso』가 세상에 나온 지 10년이 넘었다. 여전히 청춘이라고 생각했는데, 델리도 나도 중년이 되었다. 델리스파이스는 80년대 뮤지션들과는 다르게 공존하는 무엇이 있었고, 여유로운 기억이 많았다. 무엇보다 동시대에 산다는 끈끈한 연대감이 좋았다. 다섯 번째 앨범에 얽힌 사연이 실타래처럼 엉킨다. 그때는 젊었지, 꿈이 있었지. 낯간지러운 생각이 흐른다.

나이를 먹으면 좀더 나아질 줄 알았다. 막연한 낙관은 결국 정직한 세월을 쌓았다. 이기호의 소설처럼 갈팡질팡거리다가 이럴 줄 알았다. 숙취로 뒹구는 새벽, 한때는 달콤했던 청춘을 뱉는다.


덧글

  • hohorian 2014/12/01 18:54 # 답글

    음반수집가님, 오래간만에 글 올리셨네요. 잘지내셨나요?
    만40이되니 나라에서 위내시경 해주네요. 은근 걱정되던데 다행이 별일없다 하네요.
    음반수집가님도 나라에서 연락없던가요? 술많이 드시지마새요. 내시경할때 겁납니다. ^^
  • 음반수집가 2014/12/03 13:21 #

    저도 국가에서 하라고 하네요. ㅠ

    그래서 더 술 많이 먹을라고요. ^^

    한해 마무리 잘 하세요.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