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클래식책 2 음악이야기

리처드 오스본, 박기호․김남의 공역, 『카라얀과의 대화』(음악세계, 2010)
카라얀의 음악 세계보다는 그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 일에 대한 열정 뒤에 이를 해소하는 방법 등에 주목했다. 그가 명상하고, 요가하고, 스피드를 탐미하는 건 일을 하기 위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방편일 지도 모른다. 이 인터뷰집을 보고 카라얀이 음악을 사랑했던 사내라는 걸 알겠지만, 왜 훌륭한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그가 엄격한 독재자의 모습으로 세간에 알려져 있지만, 이 책에서만큼은 따뜻하게 그려진다.

96쪽 오스본 : 그(에리히 클라이버)의 아들 카를로스(카를로스 클라이버)는 어떻습니까?

카라얀 : 나는 그를 대단히 좋아하지만, 그 또한 선친의 지배를 너무나도 많이 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종종 여러 가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나를 찾아 왔고, 그러면 나는 항상 그에게 우리 오케스트라와 딱 한 번만 공연해달라고 요청했지요. 그는 지휘에 관한 한 천재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휘를 즐기지 않았습니다. “나는 오직 배가 고플 때만 지휘합니다”라고 내가 말하더군요. 그런데 이건 사실입니다. 그는 내동용 냉장고를 하나 가지고 있지요. 그는 냉장고를 여러 가지로 채우고는 자기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합니다. 그리고 냉장고가 일정 수준 이하로 비기 시작하면, 그는 생각하지요. “어제 공연해야겠군.” 그는 늑대같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 유명한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냉장고 일화가 적혀 있어 인용해 둔다.

홍승찬,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책읽는수요일, 2012)
경어체 문장이 매우 깔끔하다. 군살이 없다. 클래식 욕심을 부리다 모처럼 평온한 글을 읽었다. 저자는 음악사와 음악가와 그의 작품의 에피소드를 가지고 클래식의 필요성을 차분히 설득한다. 지은이가 궁금해 찾아보니 1962년 대구에서 태어난 서양음악학을 공부한 학자로 국립발레단 운영위원, '예술의 전당' 공연예술감독,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 공연감독, 문화콘텐츠진흥원 평가위원, 대통령실 문화정책 자문위원, KBS 교향악단 운영위원 등 CEO로서의 재능을 보였다.

83쪽 “집단생활을 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꿀벌 중에도 제멋대로인 날라리 벌이 있다고 합니다. 다들 가까이에 있는 꽃 무리에서 꿀을 따는데 입맛이 까다로운 날라리 벌은 멀리 날아가 별난 꽃을 찾는다지요. 심지어 20킬로미터를 벗어나 생명의 위협을 무릅쓴다고 합니다. 한동안 꿀벌을 먹여 살리던 꽃 무리에서 더 이상 꿀을 얻을 수 없어 모두 굶어 죽어갈 즈음 멀리 날아가 다른 꽃 무를 발견한 날라리 벌이 돌아와 의기양양하게 ‘8’자를 그리며 춤을 춥니다. 새로운 꽃 무리를 찾았다는 신호입니다. 음악사에서 베를리오즈야말로 날라리 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악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날라리 벌을 키워야 합니다. 날라리라고 손가락질 받지 않고 나름대로 날라리 짓을 하며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날라리 벌의 날라리 짓이 우리의 새로운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대개 이렇게 문장이 좋다.

오재원, 『필하모니아의 사계 : 교양인을 위한 클래식 산책』(아름다운사람들, 2010)
홍승찬의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과 더불어 읽었다. 전개는 홍승찬과 거의 유사하지만, 오재원은 자신의 해석과 추천하는 앨범 위주로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고 새로운 사실이나 의견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홍승찬의 경우에는 작가와 음악 설명에 있어 전체 맥락을 고려해 보편적인 사실들을 과감히 생략하며 독자에게 다가갔다면, 오재원은 지적 과시까지는 아니지만 소소한 곳까지 지나치게 서술해 나열식 구조로 전개한다. 학교 수업 같다는 말인데, 클래식 음악에 일정 수준 이상을 갖춘 독자가 아니라면 글로만 읽힐 책이다. 그가 추천하는 음반들도 대개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김수영, 『클래식 : 베토벤, 모차르트만 아는 당신을 위한 친절한 해설이 있는 클래식 가이드』(나무수, 2014)
이 책에 소개하는 앨범 중 어지간한 앨범은 모두 구입했다는 걸 알았다. 지금까지 읽었던 클래식 입문서, 소개서 중 대하기가 가장 편했다. 덕분에 위로와 힘을 얻다.





아네테 크로이치거헤르, 빈프리트 뵈니히 엮음, 홍은정 옮김, 『클래식 음악에 관한 101가지 질문』(경당, 2010)
독일의 퀼른음대 교수들이 클래식 궁금점들을 답한 책이다. 홍은정이 번역을 아주 잘 했다. 짧은 지식으로 읽었지만 아주 편안하게 읽었다. 꼭 김광석 노래 같았다. 그의 말투가 이 책 곳곳에 보였다.

138~139쪽 “직업 음악가의 절반에서 4분의 3 정도가 직업병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직업병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고 악기에 따라서도 차이가 납니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계속하는 연습은 치명적이지요. 항상 똑같은 움직임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음악가는 항상 기술적인 완벽함을 추구하는데다, 높은 경쟁 덕에 신체를 지나치게 혹사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심리적 부담을 안게 되지요. 더욱이 직업상 늘 과도한 음량―대규모 교향악당의 음향은 제트기가 출발할 때 나는 소음과 맞는 수준이다―에 노출되기 때문에 많은 음악가들은 난청이나 이명(귀울림) 혹은 갑작스런 청력 저하에 시달립니다.” ― 음악가는 어떤 직업병에 시달리나요? 라는 질문에서

이런 거 신기하다. 음악가의 직업병. 우리와 같군. 일은 일일 뿐이다.

210쪽 “뮤지컬 공연의 입장료는 오페라 못지 않게 비쌉니다. 대부분의 뮤지컬은 스스로 재정을 책임져야 하고 큰 오페라 극장처럼 국가나 정부의 지원을 받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뮤지컬은 대중성과 인기를 좇고 상업적인 성공을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지요. 대중들은 뮤지컬에서 흥미로운 체험과 이해하기 쉬운 음악을 기대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리고 점점 짧아지는 준비 기간과 공연 기간으로 말미암아 많은 뮤지컬은 독창적이지도 않고 그다지 멋진 음악을 선사하지도 못합니다. 그렇다고 뮤지컬을 싸잡아 오페라의 싸구려 모조품이며 오페레타의 값싼 모방이라고 비난해서는 안 되겠죠.”

뮤지컬의 현실, 상업성을 쫓는 이유, 완성도가 떨어지는 이유에 대한 답.

308~309쪽 “다른 문화권의 음악은 서방의 음악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변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팝 음악, 대중음악의 발전과 유럽 클래식 음악의 세계적인 시장화로 수천년간 지켜온 문화유산이 점점 밀려나는 상황입니다. 음악은 언어와 비슷합니다.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 언어는 사라지고 맙니다. 한 연구단체는, 다음 세기에는 아마 전체 6500여종의 언어 중 3분의 1 정도가 사멸할 것이라는 조심스런 예측을 내놓았지요. 마찬가지로 지구상의 모든 음악 문화가 다음 세기에도 고스란히 살아남지는 못할 겁니다. 귀중한 인류의 문화자산 중 일부는 되돌릴 수 없는 몰락의 길을 가겠죠.”

이 책 전체가 모두 좋지만 이 구절은 건졌다. 지금 음악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국악이 다시 살아날 수도 있다. 그러니 듣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후대를 위해 보존은 반드시 해놓아야 한다. 결국 이것이 할 일이고, 나아갈 방향일까.

조우석, 『굿바이 클래식 : 조우석의 인문학으로 읽는 클래식 음악 이야기』(동아시아, 2008)
음악 현상, 클래식의 원론주의 등에 비판은 있지만, 정작 음악 자체의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사람들이 클래식을 대할 때 열등감, 경외감만 있는 게 아니다. 분명 행복이 있다. 조우석의 오랜 공력은 어긋나 초심을 잃고 하늘에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열등감의 시작은 조우석이 아니었을까. 국악, 월드 뮤직, 대안으로 서천의 임동창, 서울의 노리조를 말하지만 처음과 달라진 서술로 읽힌다. 다른 장르와 생활 대안을 말하면서도 유독 클래식은 안 된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목사를 욕해야지, 예수를 욕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베토벤은 베토벤이고, 음악은 음악이다.

조수철, 『베토벤, 그 거룩한 울림에 대하여』(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3)
클래식 애호가들을 보면 의료계에 종사하는 분들이 많다. 이유가 무얼까. 경제적 안정 때문일까. 그렇기에는 허수가 많고. 베토벤에 대해서 이렇게 정리하고, 동양 사상을 가지고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이이의 공이 보인다. 다만 정리는 있는데, 자기 이야기가 너무 없다.




문학수,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 어느 인문주의자의 클래식 읽기』(돌베개, 2013)
글이 좋다. 통사로 엮어 가다듬는 게 필요하다.

문학수, 『더 클래식 하나 : 바흐에서 베토벤까지』(돌베개, 2014)
문학수의 두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3권 분량으로 나온다 한다. 나중에 사전처럼 찾아 읽을 것 같다. 현재 나온 클래식 입문서 중 가장 잘 된 책이다. 마구 추천해주고 싶다. 문학수가 추천하는 음반을 사고 싶어 몹시 혼났다.


덧글

  • hohorian 2014/07/10 13:20 # 답글

    1. 문학수의 <더 클래식> 요즘 저도 아껴가며 읽는 중입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레퍼토리인데도 책에서 매혹적인 묘사로 추천하면 또 사고 싶어지네요. 어제는 Jarvi의 베토벤 교향곡 시리즈에 혹하여 인터넷 서점에서 이리저리 주판을 튕기다 창을 겨우 닫았습니다. 에휴....

    2. <베토벤 그 거룩한 울림에 대하여>를 쓴 조수철의 <베토벤의 삶과 음악세계>라는 책 보셨나요? 저자의 베토벤에 대한 애정이 흠뻑 느껴지는 유용한 책이었습니다.

    3. 음반수집가님, 오페라에는 관심 없으신가요? 저는 몇년간 오페라 감상 목록을 천천히 늘려가고 있는 중인데, 은근 매력있네요. ^^
  • 음반수집가 2014/07/11 11:15 #

    1. 올해 안에 두 번째 권 나온다고 하네요.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문학수 기자의 블로도 아주 좋더군요. http://isachimo.khan.kr/ 참조하세요.

    2. 도서관에서 찾아보겠습니다. ㅋ

    3. 아직은 걸음마라 교향곡 위주로 듣고 있습니다. 자꾸 유혹하지 마세요. 감당키 어렵습니다.

    4. hohorian님도 블로깅 다시 시작하시면 안 될까요? ㅠㅠ
  • 다음엇지 2014/07/10 13:09 # 답글

    이야~ 좋은 정리입니다.
  • 음반수집가 2014/07/11 11:15 #

    다음엇지님만 하겠습니까. 격려로 듣겠습니다.
  • hohorian 2014/07/11 11:48 # 답글

    0. 생일 축하드립니다.

    1. 문학수 기자 블로그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동안 재미있게 들락거릴 것 같습니다.

    2. 말 나온김에, 박종호의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1-3> 보셨나요? 음반 구매 유혹을 참기 힘들게 만드는 책입니다.

    3. '유혹'이기 보다는 '홍익인간'의 정신입니다. ^^

    4. 음반수집가님처럼 뭘 꾸준히 하는 성격이 못되네요. 찔끔찔끔 써놓은 글들도 가끔 다시 보면 재미있긴 하네요.
  • 음반수집가 2014/07/15 13:40 #

    ^^

    1. 더 클래식 2권 어서 보고 싶네요.

    2. 1권만 읽었습니다. 박종호의 공만 인정합니다. 시각은 좀 다르더군요.

    3. 아~~ ^^ 베르디 레퀴엠까지 확장됐습니다.

    4. ㅠㅠ
  • hohorian 2014/07/15 19:41 # 답글

    베르디 오페라 정말 매력 있어요. 아직 조금씩 감상작품을 늘려가고 있는 중이긴 한데요, 베르디 오페라 참 멋있습니다.
  • 음반수집가 2014/07/16 10:02 #

    또 다르더군요. 호기심이 자꾸 일어납니다.

    하지만 너무 방대합니다. 시간관 돈이 부족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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