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만장, 자신감이 넘치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김광석의 노래처럼 매일 이별하며 사는 순간이 돼서야 10원짜리 동전 같은 생이라고 아파했다. 은색도 될 수 없는 삶이 괴로웠다.
그래도 1년에 한 두 번은 기특한 짓을 해 괜스레 우쭐한 부끄러움이 들기도 했다. 다만 사람이란 게 결코 100%가 될 수 없다는 나만의 명제를 체득했고, 그 이후부터 〈넘버 3〉의 한석규처럼 51%를 외치며 사람의 결핍을, 나의 위악을 합리화 시켰다.
고단한 중간고사가 끝난 어느 날, 레코드 가게에 넥스트의 1집이 평온히 진열돼 있었다. 나에게 음악은 연어의 고향이었고, 찾아야 하는 무엇이었다. 거리에 흘러나온 신해철의 노래는 알 수 없는 미래의 두려움을 달래주었다.
세월이 흘렀다. 나 또한 신해철처럼 배가 나왔고 목이 짧아졌다. 결코 세상이 내 마음대로만은 되지 않는다는, 어쩔 수 없는 비굴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순응했다.
잘 울지 않는 나이에 나서는 출근길, 감정이 막힌 소변처럼 답답했다. 이것저것 끄집어내며 음반에게 시비를 걸어도 동요가 일어나지 않았다.
모처럼 넥스트의 음반을 CDP에 걸고 길을 나섰다. 목동 고개길을 넘다가 멈춰 섰다. 「인형의 기사」에서, 「도시인」에서 막혔던 한숨이 터져 나왔다.
회색 도시의 전쟁 속에서 되살아난 5월의 동화 때문에 걸을 수 없었다. 절망 속에서도 살라고 소리치던 어린 내가 서 있었다. 노래는 그때를 기어코 기억해냈다.
관휘와 또 다시 출근길을 나선다.
아빠, 오늘 너무 추워.
관휘야, 아빠는 시원하다. 여름이라고 생각해봐. 에어컨 바람 같지 않니. 어깨 펴.
알았어, 아빠.
오늘 하루도 즐기고, 이따 보자.
예, 아빠도 잘 다녀오세요.


덧글
(근데 이 앨범 커버가 지금 보니 새삼 예쁘네요. 금방 봄이 올 것 같은 느낌이네요.)
2.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
2. 봄이 되서야 답글을 쓰네요.
신군님 실력이 대단하시군요. ^^
올해 가정내 평온과 안녕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