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2013~2016 음악일기


기고만장, 자신감이 넘치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김광석의 노래처럼 매일 이별하며 사는 순간이 돼서야 10원짜리 동전 같은 생이라고 아파했다. 은색도 될 수 없는 삶이 괴로웠다.

그래도 1년에 한 두 번은 기특한 짓을 해 괜스레 우쭐한 부끄러움이 들기도 했다. 다만 사람이란 게 결코 100%가 될 수 없다는 나만의 명제를 체득했고, 그 이후부터 〈넘버 3〉의 한석규처럼 51%를 외치며 사람의 결핍을, 나의 위악을 합리화 시켰다.

고단한 중간고사가 끝난 어느 날, 레코드 가게에 넥스트의 1집이 평온히 진열돼 있었다. 나에게 음악은 연어의 고향이었고, 찾아야 하는 무엇이었다. 거리에 흘러나온 신해철의 노래는 알 수 없는 미래의 두려움을 달래주었다.

세월이 흘렀다. 나 또한 신해철처럼 배가 나왔고 목이 짧아졌다. 결코 세상이 내 마음대로만은 되지 않는다는, 어쩔 수 없는 비굴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순응했다.

잘 울지 않는 나이에 나서는 출근길, 감정이 막힌 소변처럼 답답했다. 이것저것 끄집어내며 음반에게 시비를 걸어도 동요가 일어나지 않았다.

모처럼 넥스트의 음반을 CDP에 걸고 길을 나섰다. 목동 고개길을 넘다가 멈춰 섰다. 「인형의 기사」에서, 「도시인」에서 막혔던 한숨이 터져 나왔다.

회색 도시의 전쟁 속에서 되살아난 5월의 동화 때문에 걸을 수 없었다. 절망 속에서도 살라고 소리치던 어린 내가 서 있었다. 노래는 그때를 기어코 기억해냈다.

관휘와 또 다시 출근길을 나선다.

  아빠, 오늘 너무 추워.
  관휘야, 아빠는 시원하다. 여름이라고 생각해봐. 에어컨 바람 같지 않니. 어깨 펴.
  알았어, 아빠.
  오늘 하루도 즐기고, 이따 보자.
  예, 아빠도 잘 다녀오세요.


덧글

  • sunjoy 2013/02/08 10:40 # 삭제 답글

    어깨 펴. 이 말 한 마디에 저도 힘을 내봅니다. 화이팅입니다.

    (근데 이 앨범 커버가 지금 보니 새삼 예쁘네요. 금방 봄이 올 것 같은 느낌이네요.)
  • 음반수집가 2013/04/17 01:16 #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 hohorian 2013/02/08 17:15 # 답글

    이 앨범이 92년 봄 그때 나오지만 않았어도 저의 중간고사 성적은 조금 나아졌을까요. 시험공부 밀어두고 감탄하며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업데이트는 없었어도 음악생활은 계속이셨겠죠? 설명절 가족과 따뜻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 음반수집가 2013/04/17 01:17 #

    1. 바로 그때였습니다.

    2.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
  • 스래쉬 2013/02/12 23:02 # 답글

    불현듯 생각나서 찾아왔는데 업데이트가 되어있어서 참 반갑네요. 복 많이 받으시고 힘내서 가끔씩 글도 좀 올리세요^^. 이 앨범에선 "외로움의 거리"가 숨겨진 명곡이지요..... 아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네요.
  • 음반수집가 2013/04/17 01:17 #

    1. 감사합니다~~

    2. 봄이 되서야 답글을 쓰네요.

  • 신군 2013/02/13 15:13 # 삭제 답글

    가끔 삐끗해도 좋고 까칠하게 날을 세워도 좋으니 해철 옹이 오래 오래 꾸준하게 음악활동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람의 행보가 마냥 순탄했던건 아니지만 100% 완전 무결한 사람이란 없는 법 아니겠습니까. 노무현 대통령 추모 앨범에 수록된 GOODBYE MR.TROUBLE을 들으며 이제 이 사람도 마음의 짐을 좀 덜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좌충우돌 그렇게 오래 오래 음악하는 걸 봤으면 좋겠네요.
  • 음반수집가 2013/04/17 01:17 #

    제 마음이 그렇습니다.
  • 신군 2013/02/13 15:14 # 삭제 답글

    아 그리고 꽤 오랫동안 '인형의 기사'가 제 노래방 18번이었더랬지요.
  • 음반수집가 2013/04/17 01:18 #

    사실 따라부르기 어렵습니다.
    신군님 실력이 대단하시군요. ^^
  • 너털도사 2013/02/15 14:19 # 답글

    관휘 많이 컸겠어요.. 간만에 안부 전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음반수집가 2013/04/17 01:18 #

    무소식이 희소식입니다.
    올해 가정내 평온과 안녕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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