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이 힘겨워 매일 밤 조동진으로 하루를 지샜다. 반면 관휘와 서휘는 델리스파이스와 신형원의 노래로 흥겨운 가을을 만끽했다. 지겨울(?) 정도로 델리스파이스와 신형원의 노래를 들었는데, 사연은 이렇다.
하루를 마무리 하는 저녁, 아이들이 씻을 때 오디오의 볼륨을 한껏 올리고 청소를 한다. 주로 빠른 템포의 노래를 듣는다. 그날의 선곡은 스위트피의 실황 공연 중 「챠우 챠우」였다. 이게 사단이 됐다. 다음날 관휘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아빠 어제 그 노래 좀 틀어주세요.”
노래를 한 두곡 틀었나. 그 노래라니. 아이가 당돌하다.
“어떤 거?”
“그거 있잖아요. 너의 목소리가 들려.”
“아, 챠우챠우.”
비루한 음악 풍토에서 고전하는 뮤지션의 음악을 틀어달라니 거절하지 못할 제안이다. 내심 반갑기까지 하다. 「챠우챠우」를 틀어주자 관휘가 리듬을 탄다. 세 살 된 서휘가 지 오빠 따라 율동을 펼친다. 몇 번을 반복해 듣더니 관휘가 또 다른 제안을 한다.
“아빠 터는 없어요.”
“니가 터를 어떻게 알어.”
“학교에서 들었어요.”
“학교, 훌륭하다.”
집에 있는데 재생 못할 이유 없다. 터도 몇 번이고 틀어줬다. 그날 이후로 「챠우챠우」와 「터」가 매일 저녁 수십 번씩 반복됐다. 아이들이 잘 때 들어와도 어김없이 책상 위에는 스위트피(아니면 델리스파이스)와 신형원의 CD가 놓여 있다. 물린 감도 있고, 피곤할 때 생략하고 싶은데, 작은 놈이 울며불며 더욱 난리를 피운다.
“아빠, 너의 목소리가 들려 틀어주세요”
“다른 거 들으면 안 될까.”
서휘의 대답은 앙에서 악으로 변한다. 별 수 있나. 딸바보는 딸을 이기지 못한다. 「챠우챠우」를 틀어주면 빗자루로 기타를 흉내 내고, 「터」가 나오면 두 손 모은 채 앙증맞은 입으로 따라 한다. 한 달 넘게 수백 번 들으니, 아무리 좋아도 물린다. 아내에게 말했다.
“민규 형한테 서휘 동영상 찍어서 보내줘. 가장 어린 여성 팬이라고 소개하면 민규 형 결혼했어도 좋아할 꺼야.”
가을 많은 사람들에게 칼날을 세웠다. 무뎌질 만도 한데, 여전하다. 집에 와도 아이들을 따뜻하게 쳐다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네들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본 채, 그저 웃어준다. 부끄러워 죽겠는데도 안아준다. 거참, 콧날이 시큰해진다. 괜스레 해바라기의 「모두가 사랑이에요」가 생각난다.


덧글
저는 몇 해 전 덕분에 현인 선생님 시디 구하고, 점심시간에 틀었다가 아이들의 외면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가을 날씨가 스산하니 저도 가을 타나 싶은데, 관휘와 서휘 두 아이 덕분에 마음이 찡해집니다.
점심 시간에 델리를 한 번 틀어보심이...
저는 요즘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이걸 하룻 저녁에도 수십번씩 불러주고 있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