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테이프의 추억, 연애노래 Top 10 뮤직톱10


테이프에 음악을 녹음해 선물하던 때가 있었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내 또래들의 보편적인 경험담이다. 공테이프를 비롯해, 길보드 차트를 점령했던 삐짜 테이프와 집에서 굴러다니던 정철의 영어 테이프는 연애편지로 변해갔다.

좋아하는 노래 열 몇 곡을 녹음하며 나름대로 Side A면과 B면의 원투펀치에 공을 들이고, 발라드와 중간 템포, 빠른 노래를 과학적으로(?) 배열해 자가산 컴플레이션 앨범을 제작했다.

철저하게 주관적인 작업이었지만 아무리 봐도 우수하다고 자족했고, 테이프에 기뻐할 그녀를 생각하며 감동의 도가니탕을 끓였다. 이도 모자라 카세트 말미에 REC를 눌러 본인의 육성을 녹음하는 만용까지 저질렀다.

넬의 「기억을 걷는 시간」을 듣는 순간, 잊고 살았던 시절이 되살아났다. 다시 자가산 연애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 그 시절 어떤 노래를 녹음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유재하, 이승환, 부활 등을 녹음했던 것 같기도 한데, 추정일 뿐이다.

자세한 기억의 재생까지는 힘들어 지금의 감정에 충실한 노래 열곡을 찾아봤다. 철저하게 지금의 아내가 아닌 젊었던 아내의 스무 살을 그리며 노래를 꼽았다(거듭 말하지만 아내를 생각하며 만들었다, 고 강조한다).

Side A
1. 넬, 「기억을 걷는 시간」(2008)
“어떤가요 그대”라는 가사 구절이 자꾸 때린다. 노래의 전개가 영화의 그것이다. 막강한 선발 투수라고 자신한다.

2. 활주로, 「처음부터 사랑했네」(1978)
때로는 반전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대를 처음 본 순간 내 심정이었다고 말할 노래다. 배철수를 음악캠프로만 안다면, 이야기 거리는 많아진다.

3. 임현정,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2003)
비오는 날, 어떤 연인이라도 같이 들으면 행복할 노래다. 다만 겨울에는 듣지 말 것.

4. 브로콜리 너마저, 「봄이 오면」(2008)
이 땅의 처녀총각들이 브로콜리 너마자의 음반을 주고 받았으면 좋겠다. 8, 90년대 우리 가요의 자양분을 제대로 흡수한 팀이다. 수많은 청춘들의 정서함양에 크나큰 공을 세웠다.

5. 이승환, 「나는 나일뿐」(1992)
신새벽에 이 노래를 들으면 참 많이 울었더랬다. 오태호의 숨은 명곡이자 객관을 가장한 철저하게 주관적인 선곡 1.

Side B
1. 무당, 「내 사랑은」(1980
)
투톱 중 당당히 한 축을 차지한다. 나는 아직도 이 노래에 환장한다.

2. 이문세, 「소녀」(1985)
이문세의 명곡 중 「소녀」를 택한 건 순전히 그녀의 사춘기를 위해서다.

3. 나훈아, 「해변의 여인」(1972)
절창. 소름 돋지 않을까. 객관을 가장한 철저하게 주관적인 선곡 2.

4. 김창기, 「상처」(2000)
그녀를 위한 위로가, 상처를 핥아준다는 표현은 두렵지 않은 공포감을 부른다.

5. 눈뜨고코베인, 「그 자식 사랑했네」(2005)
그녀의 웃음을 위한 헌정 가요.

보너스 트랙
1. 윤상, 「이별없던 세상」(1992)
2. 델리스파이스, 「챠우챠우」(1997)
3. 빛과소금,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1991)


덧글

  • 빛의제일 2012/02/14 20:59 # 답글

    오래가만에 들어보는 길보드차트입니다. ^^ 목록을 만들어가면 테이프로 만들어주는 가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음반수집가 2012/02/14 23:18 #

    레코드 가게 버전도 꽤 샀던 기억이 납니다. 그 많았던 사연들 다 어디 갔을까요...
  • 스래쉬 2012/02/14 23:51 # 삭제 답글

    멋진 컴필레이션입니다.... 저도 언젠가 아내가 생긴다면 저만의 컴필레이션을 선물해주고 말겁니다!!
  • 음반수집가 2012/02/15 09:25 #

    이것 저것 선곡하다보면 이상하게도 자기 생이 정리되더군요.
    언제가 올해이길 바래요~
  • 鷄르베로스 2012/02/15 02:13 # 답글

    예전엔 레코드 가게에서 판매하려고 진열한 앨범 뜯어서 공테이프 녹음해서도 팔고 그랬었죠?

    제가 가지고 있는 음반중에 도켄의 투드 앤 네일이 바로 그 희생자(?) 입니다.

    살거라고 꺼냈더니 비닐은 절단되어있고 ... 뭐 그래도 사서 나오는 마냥 뿌듯하더라구요 ㅋ
  • 음반수집가 2012/02/15 09:26 #

    그러기도 했습니다.
    공테이프가 비싸면 정품만큼 비싸기도 했고, 설레기도 하고...
    여러 현장이 생생하게 재생됩니다.
  • sunjoy 2012/02/15 20:10 # 삭제 답글

    테이프 컴필녹음, 저도 참 숱하게 했던 짓이었지요.^^
    요즘 오디오에 카세트데크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다시 해보고픈 짓입니다.
    참 흥미진진한 리스트네요.

    A면에 다섯곡이면 좀 적은데요?
    다년간의 녹음경험에 비추어볼때 60분짜리 테이프라면 A면에 한두곡 더 들어가겠네요.ㅋ
  • 음반수집가 2012/02/20 14:50 #

    저는 45분짜리 일제 공테이프를 통해 녹음하곤 했습니다. 가격이 거의 정품테이프 가격과 비슷했습니다. 런닝타임을 고려하여 보너스트랙을 넣었습니다. ^^
  • 햇님훈남 2012/02/16 23:39 # 답글

    아 녹음을 위해 지워지던 테이프들
  • 음반수집가 2012/02/20 14:51 #

    (아 녹음을 위해 지워지던 테이프들)을 생각하니, 참...
  • 오랜친구 2012/03/29 17:50 # 삭제 답글


    미팅가서 만난 상대에게 After 때 만나서
    열심히 녹음한 테이프를 선물해 줬읍니다.
    테이프도 고급 SK-Crome 으로....

    녹음해준 노래중 하나가 이현석 1집에 있던 " 변하는 마음" 이라는 락발라드 였는데....

    말이 씨가 된다고....헤어졌읍니다....아니 차였읍니다...
    지금은 젊은 날의 추억의 한페이지네요...


  • 음반수집가 2012/03/29 20:11 #

    아....

    녹음한 테이프에 많은 사연이 있었죠.
    저도 몇 장 가지고 있는데, 여인들의 자취가 남아있죠.
    변하는 마음 듣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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