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과 평화 2집을 기다리며 명절 내내 동동거렸다. 예전 오아시스에서 발매된 『골든힛트곡선집』을 몇 번이나 사려했지만 언제고 1, 2집이 다시 나올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결국 희망사항은 현실이 됐고, 예전미디어에서 사랑과 평화의 1, 2집을 재발매 했다.
2011년 한국 대중음악은 〈나는 가수다〉의 시대였다. 하지만 수집가인 나에게 나가수보다는 〈아름다운동행〉에서 발매한 “All That Masterpiece Series"가 작은 반향을 일으켰다. 올댓마스터스 시리즈는 음반컬렉터들에게는 피해갈 수 없는 장면을 연출했는데, 김광석, 동물원, 이문세를 위시해 동아기획의 명작을 재발매 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림자가 존재한다.
1994년 개정된 저작권법은 저작인접권의 적용 기간을 50년으로 늘렸으나 유독 1987년 7월1일부터 1994년 6월30일까지 발매된 음반들의 유예기간은 20년이었다.
이 맹점은 누구라도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사용신청을 하면 창작자와는 관계없이 2011년 현재 1987년부터 1991년까지 발매된 음반은 어떤 형태로든 만들 수 있게 했다. 봄여름가을겨울, 정태춘 측에서 이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도리가 없었다.
창작자의 답답하고 억울한 심사가 이해된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발매되는 음반들이니 오죽하랴. 다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납득된다.
〈아름다운동행〉에서 발매한 음반들이 원작과 다른 부클릿, 그때의 아우라를 느낄 수 없는 단점이 존재하지만 어찌됐든 절판된 음반과 지금에서는 도저히 들을 수 없는 음악을 다시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더 나아가 〈아름다운동행〉의 올댓마스터스 시리즈는 〈예전미디어(舊 킹레코드)〉를 자극해 이문세 원작 논란을 일으키며 이문세 4, 5, 6집이 원형대로 재발매되는 기회를 제공한다. 〈예전미디어〉는 이문세를 비롯해 양희은의 1971년작, 전설 같았던 김두수 1집, 사랑과 평화 1, 2집까지 재발매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모두 최초로 CD화 됐다.
비록 〈아름다운동행〉과 〈예전미디어〉의 재발매반들이 비트볼이나 리버맨뮤직만큼의 퀄러티만 못한 게 사실이지만 11월, 사랑과평화, 이문세의 음반 등은 미워하려해도 돌아설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테이프 세대인 나에게 사랑과 평화의 초기 앨범은 실상 온전한 작품으로 접하기 힘들었다. 암울했던 70년대 후반, 산울림과 송골매가 전부였다는 나에게 제대로 한방 먹여주었다. 이래서 자료(음반)가 중요하다. 가공되지 않은 사랑과 평화 『1집』과 『2집』은 훌륭했다.
최이철, 김명곤의 투톱은 전설처럼 회자된 슈퍼 연주는 아니었지만 짜임세가 견고했고 틈이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재기발랄하고 명랑했으며 독특한 질감은 지금도 이질적이다.
사랑과 평화의 앨범을 순차적으로 들으며 자기만의 색깔을 견지해 왔다는 게 보인다. 다른 무엇보다도 1, 2집 히트곡을 양산한 이장희의 힘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부클릿 여기저기에 가명으로 명기한 그의 웃지 못 할 사연은 우리 현대사의 부조리한 장면을 끔찍하게 증언했다.
이 빠진 사랑과 평화의 전작을 채우며 다시금 전작주의자의 꿈(이 말은 조희봉의 책 제목로부터 빌려왔다)이 발동한다. 사랑과 평화의 음악 듣기는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70년대 우리 명장들을 다시 되살렸고, 한국고전의 계보학을 거칠게나마 정리해줬다.
꿈 많던 만용의 세월이 지나고, 현실에 채여 한없이 작아지니 이제야 왜 선배들이 그렇게 살아왔는지 이해가 된다. 비록 사랑과 평화를 직접 만나지는 않았더라도 음악을 통해 그들의 생을 엿보았다.
무언가 허전하지만 질감이 달랐던 사랑과 평화의 음악은 그들이 있어 지금이 있었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의미를 일깨운다. 결국 구원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었다. 낡고 오래 됐지만 그곳에 답이 있었다.
중언하지만 십 수 년 된 아티스트의 전작을 갖추고 듣는 행위는 더할 바 없이 즐겁고 삶의 조급함을 달래준다. 사랑과 평화의 30년을 꿰어놓으니 오래 살고 싶다. 다행이다. 죽을 때까지 듣지 못할 음악이 많아서.


덧글
그저 반갑습니다.
결국 CD로 나오고 말았습니다. ^^
3집도 괜찮지만, 4집 이후부터는 매니악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