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본 변진섭은 시골에서 막 상경한 청년처럼 순박했다. 그의 첫 노래인 단조의 「홀로 된다는 것」도 그전 발라드와 달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트롯에 더욱 닮아 있었다. 다만 가창력이 워낙 뛰어나 동시대 다른 가수들에 비해서 튄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한 두곡의 히트곡과 구색맞추기용 노래로 앨범이 횡행하던 80년대, 변진섭의 데뷔 앨범은 색달랐다. 하광훈의 감독 하에 만들어진 『1집』은 이영훈과 이문세의 그것처럼 오로지 “발라드”라는 하나의 문법으로 승부한다. 승부수는 우직했지만 힘이 대단했다.
〈가요톱텐〉 2주 정상을 차지한 '뽕발라드'「홀로 된다는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연이어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 뿐」, 「너무 늦었잖아요」, 「그대에게」가 연이어 TV와 라디오, 거리 만방에 울려 퍼진다.
여기에 가수를 꿈꾸는 수많은 이들을 좌절케 한 「새들처럼」까지 그의 노래는 1989년 대한민국 가요계를 변진섭의 나라로 만들어 버린다. 이광조, 이문세를 잇는 새로운 발라드의 명인의 탄생이었다.
버릴 곡 없는 『2집』에 비해 상대적으로 『1집』은 몇 몇 곡으로만 기억된다. 그러나 『1집』에는 미덕이 있다. 『2집』이 변진섭의 상업성을 극대화 해 치밀한 운산 속에 제작되었다면, 『1집』은 변진섭이라는 개체의 가창력을 최대로 실현해 낸 앨범이다.
변진섭은 80년대와 90년대 사이 우리 대중음악의 가교 역할을 충실해 해냈고, 발라드의 지향점을 보여준 모범사례였다. 그에 대한 증거물이 바로 변진섭 『1집』이다.
※ 부기 : 변진섭은 1987년 제1회 MBC신인가요제를 통해 실질적으로 데뷔한다. 변진섭은 1집에 다시 실린 「우리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은상을 수상했다. 「우리의 사랑이야기」는 변진섭 『7집』 이전까지 유일한 자작곡이기도 하다.


덧글
제대할 때쯤에는 강수지의 보라빛 향기가 나와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죠. TV에서 강수지 나오면 다들 헤벌레 해가지고 침 질질 흘렸었는데..........
2. 저는 룰라가 최고였습니다. 침까지는... ^^
어느정도만 잘되었어도 진화했을텐데.
그러한 성공방식을 버리기 쉽지 않죠
조성모도 그러했던 것처럼
변진섭이라는 일관된 색채를 유지하며 조금씩 바뀌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들고요.
가능성이 무궁무진했는데, 단기간으로만 기록돼 아쉬울 뿐입니다.
2011/04/26 21:12 # 삭제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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