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논문 후기 └2009 음악일기


올 2월 즈음이었던 것 같다. 평소 존경하는 선배가 대전에 문화 잡지를 만든다며, 조용필 논문을 부탁하셨다. 당시 가벼운 마음으로 승낙했다. 조용필 글을 몇 번 쓴 적이 있었고, 어차피 평소에도 작업하는 거 글들을 총합하면 되겠다 생각했다.

가을에 접어들어 정식으로 원고 요청을 받으며 발등에 불이 떨어졌음을 몸으로 느꼈다. 구상이 잘 되지 않아 일단 자료부터 모아보자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찾아보았지만, 의외로 이게 힘들었다. 조용필 정도면 읽을거리가 꽤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논문을 준비하며 강헌과 조용필이 98년 리뷰 가을호에서 가진 인터뷰, 강헌이 2004년 문학수첩 봄호에 기고한 「조용필-한국 대중음악의 거대한 이정표」, 인터넷 웹진 Weiv의 조용필 음반 리뷰들, 그 외 조용필 공식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조용필의 옛자료들이 큰 도움이 됐다.

막상 논문을 마치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 찝찝하다. 애초 조용필과 한국음악산업의 구조에 대해서 씨줄과 낱줄로 엮어보려고 했지만,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통사로 정리하며 세세한 가치들을 많이 생략했다. 내 한계를 체감했지만, 이만한 공부도 없었다. 무엇보다 조용필이라는 거인을 나 또한 다시 보는 계기가 됐다.

논문을 마치기 전날 어머니께서 우리집에 오셨다. 그녀에게 조용필을 들려줬다. 어머니는 저렇게 CD가 많은 놈이 조용필 한 장 안 사주냐며 한참 동안 조용필을 듣는다. 좋으신가 보다. 좋아요 묻자, 조용필이 최고지라고 답하신다.

「단발머리」가 나올 때는 관휘까지 출현해 아빠 이 노래 뭐야 묻는다. 좋니 묻자, 좋아라고 답한다. 아, 조용필이 이런 거구나, 할머니와 손자가 함께 들어도 좋은 거, 그런 보편성.

예식장에 가야돼 「고추잠자리」를 끝으로 오디오를 끄려고 했다. 어라, 노래의 끝부분 곽경욱이 연주한 기타의 거친 질감이 아주 좋다. 뭐야, 함춘호가 처음 아니었어. 또 정신을 잃고 서 있다.

논문 끝내려 하는데, 이 말도 써야하나. 고민하며 문밖을 나선다. 그때 다섯 살 관휘가 처음 들었던 「고추잠자리」의 “엄마야 나는 왜”를 어설프게 부른다. 소름이 돋는다. 〈작전〉의 박희순 대사대로, 오케이 여기까지, 이러다가는 끝도 없겠다. 이제는 나도 즐기자.


덧글

  • 5thBeatles 2009/12/14 08:16 # 삭제 답글

    좋은 글 감사드려요. 건필하시길. :)
  • 음반수집가 2009/12/16 01:15 #

    환송연 한번 해드려야 하는데... ^^

    감사합니다.
  • basher 2009/12/14 09:27 # 삭제 답글

    세대를 아우르는 음악 좋네요 어머님과 아드님의 반응이 참으로 훈훈합니다
    덕분에 조용필이란 뮤지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네요
    오늘 퇴근하면 1집을 찾아 들어야 겠습니다 제 유년시절 제 귀에 처음 꼽혔던
    곡도 그러고 보니 단발머리군요 ㅎㅎ
  • 음반수집가 2009/12/16 01:16 #

    한번 멋지게 넘겨주세요. ^^
  • 너털도사 2009/12/14 10:24 # 답글

    글을 읽어보니 그간 심적 압박이 대단하신 듯 합니다.
    네 이젠 좀 즐기세요^^
  • 음반수집가 2009/12/16 01:16 #

    시원하네요. ^^

    많이 즐길래요.
  • 빛의제일 2009/12/14 10:27 # 답글

    쇼핑몰 장바구니에 담아둔, 조용필 공연DVD를 사야 할 것 같습니다. 아우, 심성락, 현인 등등 음반수집가님 포스트를 읽고 지른 cd가 꽤 있습니다.
  • 음반수집가 2009/12/16 01:16 #

    죄송할 뿐입니다. ^^

    대신 좋은 시간 꼭 되셔야 합니다.
  • 렉스 2009/12/14 12:33 # 답글

    수고하셨어요><) 뜨겁습니다. 흐.
  • 음반수집가 2009/12/16 01:17 #

    예전 렉스님이 연재하신 신해철, 이승환 글이 많이 생각나더군요.

    힘겨웠습니다.
  • focus 2009/12/14 13:53 # 답글

    후기 기다렸습니다...ㅎ
    취미가 아니면 스트레스가 생기죠..

    그나저나 23일쯤 대전에 다시 갈 듯한데 시간 애매하네여..
  • 음반수집가 2009/12/16 01:18 #

    오늘 서울 다녀왔습니다.
    저녁 시간이 넉넉하지 못해 연락 못드렸습니다.

    시간 한번 잡아보게 미리 알려주세요. ^^
    차라도 꼭 한잔~~
  • 젊은미소 2009/12/20 11:50 # 답글

    수고 많으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조용필 형님 후기 쪽에 소홀했던 것이 부끄러워지려고 하는군요. ^^
  • 음반수집가 2009/12/21 05:33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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