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의 계절 └2009 음악일기


낮에는 반팔을 입고 다니지만 저녁에는 긴팔이 아쉽고, 잠잘 때는 제법 두꺼운 이불이 필요하다. 여름이 갔다고 날씨가 말한다.

계절의 첫 무렵, 영양분이 필요한 몸처럼 음악도 변화한다. 여름에는 펑크와 직선적인 헤비메탈을 찾는데, 가을에 접어들면 재즈를 듣고 싶어진다. 집에 있는 재즈 앨범을 살피니 10장 내외다. 장르로 따지면 재즈 앨범은 적은 편에 속한다. 내가 의도적으로 사지 않아서다. 몇 번 언급했지만 재즈와 클래식 음반을 사지 않는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들에게 빠지면 뒷감당이 안 돼서다. 방대하고, 앨범 종류가 끝이 없다. 재즈 앨범과 클래식 앨범은 연주별, 시기별, 사람별로 종류가 나뉘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하염없이 재발굴 된다.

가요와 팝 앨범처럼 몇 집으로 끝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지금 성행하는 대중음악의 리팩키지는 재즈와 클래식에 비하면 애교다. 재즈와 클래식을 마스터하려면 돈과 시간은 무한대로 늘어난다.

두 번째 이유는 나중을 위한 보고로 남겨두고 싶어서였다. 언제고 지금 듣는 음악이 질렸을 때, 들을 게 없을까봐 두려워서였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걸 깨고 싶다. 안 할 말이지만 내일이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좋은 음악이라면 지금 최선을 다해 즐기고 싶다.

내가 죽을 때까지 못들을 음악이 더 많이 있는데, 한계 짓고 싶지 않았다. 금기를 깬 기념으로 모처럼 마일즈 데이비스의 앨범 한 장을 주문했다. 그리고 마음 편히 재즈를 들었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Kind Of Blue』, 호레이스 실버의 『Song For My Father』, 커티스 풀러의 『Blues Ette』 , 캐논볼 애덜리의 『Somethin' Else』를 들었다. 계절의 정취와 잘 어울린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Kind Of Blue』는 언제 들어도 깊고 상상력이 풍부하다. 『Kind Of Blue』 한 장 가지고 참 오래도록 버티었다. 내일부터는 조금 덜 외로우리라.

오늘 들은 재즈 중 압권은 캐논볼 애덜리의 「Autumn Leaves」와 커티스 풀러의 「Love Your Spell Is Everywhere」이었다. 이 계절에 「Autumn Leaves」만한 곡은 없을 것이다 이 곡은 몇 번이고 반복해 들었다.

모든 일과를 마치고 듣는 커티스 풀러의 「Love Your Spell Is Everywhere」는 온몸의 긴장을 풀어줬다. 옛날이 마구마구 생각났지만 그 아련한 기억들이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말없는 재즈 앨범을 들으며 오랜만에 제대로 된 여행을 다녀왔다. 그 옛날만큼 몸이 기분 좋게 나른하다.


덧글

  • 양고기 2009/09/25 00:39 # 답글

    전 Bill Evans Trio의 Autumn Leaves 한때 자주 들었는데 캐논벌 애덜리 앨범도 사야겠어요 ㅎ
  • 음반수집가 2009/09/25 10:37 #

    저는 그럼 Bill Evans Trio에 관심을 두겠습니다. ^^
  • 2009/09/25 00:50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음반수집가 2009/09/25 10:37 #

    기억합니다. 김민기 박스 얘기를 나누던 생각이 나네요. 맞죠?

    저도 자주 놀러가겠습니다. 오늘 아침 까치가 울더니.. 반갑습니다.
  • 대연 2009/09/25 05:24 # 답글

    가을의 Autumn Leaves는 진리 오브 진리 아니겠습니까.
  • 음반수집가 2009/09/25 10:38 #

    "진리 오브 진리" 요 말 꽤 멋지네요. 표절하고 싶습니다. ^^
  • 세인트7 2009/09/25 08:59 # 삭제 답글

    Autumn Leaves 연주자별로 뽑아서 하루종일 들어도 질리지 않지요. 담배회사에서 나온 컴필레이션 앨범에서 들었던 멜 토메가 부른 것도 참 좋더군요. 가을은 남자의 계절... 가을 사나이라면 역시 재즈가 아니겠습니까? 캐논볼 애덜리의 Something Else... 말이 캐논볼 애덜리 앨범이지 실제로는 마일스 데이비스 앨범이란 생각이 더더욱 드는 앨범이지요 ^^ 눈병 나신 건 좀 많이 나으셨는지... ^^
  • 음반수집가 2009/09/25 10:38 #

    더 이상의 유혹은 그만 ㅠㅠ

    오른쪽은 좋아지는데, 왼쪽이 악화되네요. 견딜만합니다.
  • basher 2009/09/25 10:34 # 삭제 답글

    가을이라 케니 버렐의 미드나잇 블루는 어떻습니까? ^^
  • 음반수집가 2009/09/25 10:39 #

    찾아서 들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너털도사 2009/09/25 10:48 # 답글

    이름은 다 아는데 앨범은 없다는. 수집가님의 음악 취향은 참 훌륭하신 듯.
  • 음반수집가 2009/09/29 01:12 #

    별 말씀을~~ 부끄럽습니다.
  • SP 2009/09/25 17:36 # 답글

    저는 역시 빌 에반스가 연주하는 Autumn Leaves 가 좋더라구요. 가을에는 빌 에반스의 Affinity 앨범이 어떨까요? I do it for your love 같은 음악...
  • 음반수집가 2009/09/29 01:12 #

    찾아보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좋은사람 2009/09/28 13:01 # 답글

    그렇군요. 가을이라 어제 저도 한장의 시디를 사서 듣고 있습니다. Diana Krall의 새앨범인데요. 오늘은 저도 수집가님 말처럼....재즈음반을 좀 꺼내봐야겠네요. ㅎ^^
  • 음반수집가 2009/09/29 01:12 #

    계속 마일즈 데이비스를 듣고 있습니다. 정말 좋네요.
  • 랜디리 2009/09/29 14:16 # 삭제 답글

    Blues-ette 정말 좋죠. 잘 때 많이 틀어놓습니다 ;ㅅ;b
  • 음반수집가 2009/10/01 17:28 #

    정말 좋더군요. ^^
  • 황씨아저씨 2009/10/03 07:42 # 답글

    옛날이 마구마구 생각났지만 그 아련한 기억들이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 늙었다는 증거입니다. ㅎㅎ
  • 음반수집가 2009/10/07 03:26 #

    악~~ 강조하시 마세요. 이 가을이 슬픕니다. ㅠㅠ
  • 웬리 2009/10/03 16:52 # 삭제 답글

    저도 굉장히 좋아하는 트럼보니스트죠...
    저 곡 정말 좀 텐션 다운 해주는 효과가 있는것 같아요...
    나른 나른...나긋 나긋~ ^^
  • 음반수집가 2009/10/07 03:26 #

    나른 나른, 편안 편안...
    긴장 해소에 좋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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