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소년이고 싶다 └2009 음악일기


1. 영화 〈20세기 소년〉 1편을 봤다. 2편은 어떻게 볼 방법이 없었다. DVD 나오기를 기다려야겠다. 만화만큼 땀이 나지 않지만 구성만큼은 원작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뭐니 뭐니 해도 영화 전체에 걸쳐 정확하게 세 번 흐르는 T-Rex의 「20th Century Boy」는 상상했던 그대로 전율이었다.

덕분에 티렉스의 베스트 앨범을 몇 번이나 반복해 들었다. 아무래도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을 모두 구입해야 할 듯싶다. 다시 읽고 싶어 안절부절못하다.

2. 밥 딜런을 새롭게 듣고 있다. 왜 밥 딜런이 위대한 작가인지 희미하게 다가온다. 『The Freewheelin' Bob Dylan』에서는 평온을, 『Modern Times』에서는 회한을 느꼈다. 특히 여고생이 잔득 탄 버스에서 「Spirit On The Water」를 듣다가 울음이 나와 참느라고 혼났다. 이런 음악을 들으면 나이 먹는 게 전혀 무섭지 않다.

3. 픽시스의 『Doolittle』는 몇 년을 꾸준히 들었는데도 뭐라고 규정할 수가 없다. 생동감 넘치는 청춘의 현장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익숙함 속에 새로움이 있고, 새로움은 낯설지 않다. 앞으로도 『Doolittle』를 들으며 나는 소년이고 싶다.

4. 80년대 헤비메탈은 『사조영웅전』에서 구지신개 홍칠공이 핥던 닭 뼈 같다(홍칠공은 닭다리를 다 먹고 나서도 무슨 보물이 있는 량 닭 뼈를 핥고 또 핥았다). 이미 들을 데로 들었는데 무궁무진하다. 이거야말로 진짜 맛 아니겠는가. 거의 포기 수준이었던 데프 레파드의 『Hysteria』가 이렇게 좋을 줄 미처 몰랐다. 헤비메탈에 있어 계륵이란 존재할 수 없다.

5. 따로또같이의 2, 3집을 연달아 들었다. 이들의 음악은 포부가 대단했고, 들국화와 겨룰 만 했다. 이주원의 죽음은 생소하다. 항상 옆에 있을 줄 알았다. 어떻게 말을 할 수가 없다. 한참 지나고 나면 내 몸이 많이 아플 것 같다.

6.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음악은 조지 해리슨이었는데, 작년부터 폴 매카트니가 슬슬 그 자리를 탐낸다. 같은 비틀 출신이니 그 자리를 양도할 의사를 분명히 밝힌다.

7. 봄여름가을겨울의 「어떤이의 꿈」을 들었다. 지금 들어도 여전히 섹시하다. 이 좋은 음악이 나온 지 올해로 꼭 20년이 됐다. 이제 봄여름가을겨울도 고전으로 향하는구나. 무엇보다 전태관을 좋아했다. 그의 드럼연주는 기교를 제거한 채 정직하다. 한마디로 힘이 좋다.

90년대 『핫뮤직』을 보면 영역별 뮤지션 서열이 매겨져 있었다. 거의 대부분 헤비메탈 선수들이 순위를 점령했는데, 한국 드러머 부분에 믿기지 않는 이름 하나가 있었다. 바로 전태관이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이제 그마저도 추억이구나. 전태관은 김응윤, 신동현과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3대 드러머다.

8.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과 음악들이 이제는 유물이 되어간다. 나 또한 서서히 늙어가고 있다. 여전히 나는 20세기 음악을 좋아하는 데 말이다. 21세기 소년 관휘가 있으니 그리 억울할 것도 없다. 세월을 즐기자.



덧글

  • 석원 2009/04/23 18:14 # 답글

    음, "아메바스 씨크릿"이 수입됐나보네요. 신기해라.
  • 음반수집가 2009/04/23 18:41 #

    곳곳에 있더군요.
    처음엔 부틀렉인줄 알았습니다.
    들어보니 감은 멀지만 생생하네요.
    2007년 Ver "I Saw Her Standing There"이 구매동기 1순위였습니다.
  • 김갱양 2009/04/23 18:43 # 답글

    20세기의 음악을 사랑하던 소년은 소녀시대 때문에 21세기로 귀를 돌렸다...라고 말하고 싶네요.
  • 음반수집가 2009/04/23 18:44 #

    하하하~~
    즐겁게 웃었습니다.
    또 그러네요. ^^
  • 로베르또 2009/04/23 20:19 # 답글

    글램 락의 업적들이 지워진 시대에 그 만화 덕분에라도 t-rex와 마크 볼란을 여전히 기억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여전히 저도 20세기소년으로 살고 싶습니다.
  • 음반수집가 2009/04/26 03:39 #

    ㅎㅎ~~
    20세기 소년이 있어 반가울 따름입니다.
  • 청광 2009/04/23 21:14 # 답글

    「Spirit On The Water」는 참 좋은 곡이죠. 곧 새 앨범도 나오네요, 그러고보니.
  • 음반수집가 2009/04/26 03:39 #

    예, 기다리고 있습니다.
  • 현재시제 2009/04/23 23:58 # 답글

    데프 레파드... 어렸을 적 왜 이 냥반들이 그다지 싫었던지...

    지금은 그냥 우워어~ -_-;;
  • 음반수집가 2009/04/26 03:39 #

    ㅋㅋㅋ~~
    저도 지금은 우워~~ 입니다.
  • SF_GIRL 2009/04/24 08:45 # 답글

    1. 저도 영화보고 노래 "20세기 소년"이 너무 좋아졌어요. 가사도 너무 귀엽고. 특히 너의 20세기 소년이고 싶어..이 부분에선 "응, 제발 되어줘"라는 기분이랄까...? (음..)

    근데 티뤡스의 오리지널도 좋은데 플라시보-데이빗보위 둘이 부른 꿈의 버전;;도 있더군요
  • 음반수집가 2009/04/26 03:40 #

    예, 그 꿈의 버전도 들어봤습니다.
    그래도 저는 티렉스에 한표~
  • 지기 2009/04/24 11:53 # 답글

    원작에 대한 환상이 깨질까봐 영화는 안보고 있었는데, 한번 봐야겠습니다. 아무래도 만화책으로는 묘사할 수 없는 음향이란 부분이 주는 감격은 역시 무시하지 못하겠지요?^^ 저는 딜런의 초기작들보다 근작들이 더 귀에 잘 들어오는 것 같아요. 세월을 거친 그의 목소리가 가슴을 더 깊게 울리는 것 같아요.
  • 음반수집가 2009/04/26 03:40 #

    실망하신 분들은 많으신 것 같던데, 저는 복습 차원에서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음악과 영상의 매치가 좋더군요.
  • Betty 2009/04/24 14:17 # 답글

    데프 레파드 노래들은 고등학교 때 들었던 몇곡 빼곤 영 적응을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 음반수집가님의 이 글을 보고 히스테리아를 들으니 갑자기 심장이 쾅쾅 뛰네요.
  • 음반수집가 2009/04/26 03:41 #

    ^^~~

    즐감하세요.
  • focus 2009/04/24 14:49 # 답글

    Pyromania 에서 Hysteria 발매까지 멤버들이 보여준 의리때문에
    이 음반은 더더욱 빛을 냅니다..ㅎ
  • 음반수집가 2009/04/26 03:41 #

    예, 그 뒷이야기도 참 감동스럽죠. 여러 모로 좋은 앨범입니다.
  • Achi 2009/04/24 20:59 # 답글

    랜덤여행중에 들리게 되었네요..
    구경 잘하고 갑니다~~^^;
  • 음반수집가 2009/04/26 03:41 #

    예, 좋은 주말 되시고요.
    자주 놀러오셔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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