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음악 이어 듣기 └2009 음악일기


의도적으로 우리 음악만 찾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요즘 들어서는 단 ‘5분’이라는 짧은 시간도 아깝다. 하루가 헛되지 않게 온 힘을 다해 바동거리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운 지금을 보내는데도 정신만큼은 여유롭다.

김현철, 루시드 폴, 국내 최고 아티스트 23인의 조화, 김현식, 외인부대, 양수경, 빛과 소금, 검정치마, 시인과 촌장, 더더, 봄여름가을겨울, 윤상, 무당을 듣다.

김현철의 『2집』은 그의 빛나는 재기가 정점이었던 마침표 앨범이다. 김현철을 보면 세상이 공평하다. 신은(존재한다면) 김현철의 천재성을 오랫동안 지속시켜주지 않았다. 매정하고 잔인한 말이지만 김현철이 1, 2집 단 두 장만 내고 세상에서 사라졌다면 유재하에 버금가는 명성을 누렸을 것이다.

루시드 폴의 『노래의 불빛 The Light of Songs』는 지극히 조윤석답다. 이 좋은 라이브 앨범이 아쉬운 건 미선이 시절 노래가 단 한곡뿐이라는 점이다. 미선이의 「sam」 라이브 버전은 오줌이 저리도록 반갑다.

우리 음악 이어 듣기 동기는 『국내 최고 아티스트 23인의 조화』때문이다. 신중현, 이정선, 엄인호, 윤상, 장기호, 신대철, 김도균, 한상원 등 내로라하는 명장들의 새로운 노래들이 평균 이상의 것을 해내고 있다. 이 앨범의 노래를 끝으로 아직까지 신곡을 발표 하지 않는 아티스트들이 무더기구나.

김현식의 모든 앨범이 CD로 다시 나왔지만 유독 『2집』만이 제 모습이 아니었다. 고맙게도 작년 뮤직리서치에서 원모습을 찾아 CD로 발매해줬지만 일전에도 얘기했듯 왜 음반 중간에 건전가요 「시장에 가면」을 넣었는지 모르겠다. 이건 아니다. 안타깝고 짜증난다. 앨범이야 훌륭하다. 김현식이 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첫 음반이다.

시나위 때의 임재범보다는 외인부대와 아시아나 시절의 임재범이 더 그럴 듯하다.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시나위 『1집』은 음질이 조악하고 퇴고가 없다.

양수경이란 존재는 나에게 의미부여할 만하다. 헤비메탈과 동아기획 앨범들이 난무하던 시절에도 그녀는 존재했고, 지금도 즐겨 듣는다. 평범했지만 단아한 그녀의 간결미가 이토록 나와의 질긴 인연을 만들었다.

빛과 소금은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 음악 발전에 이바지한 독특한 팀이다. 재즈를 어렵지 않게 표현했고, 재즈의 정신을 이어받아 음악표현 또한 자유로웠다. 「샴푸의 요정」은 지금 들어도 신비하고, 「내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는 배부르게 행복하다.

2008년 우리 음악 최고의 수확은 누가 뭐래도 검정치마와 장기하다. 장기하가 가능성을 열어주며 차기작을 기대케 만들었다면 검정치마는 완벽한 데뷔반을 보여줬다. 이토록 대단한 신인, 정말 오랜 세월을 기다렸다.

시인과 촌장의 음악은 잔혹동화다. 산울림의 동요가 천진난만함을 가장한 채 비극을 내포하고 있다면, 시인과 촌장은 그 비극을 감추지 않는다. 그럼에도 살이 떨리는 음들의 시간은 충분히 감동스럽다.

시인과 촌장이 대단한 건 비극에 감정을 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면 청자가 노래에 들어설 여지가 매우 넓다. 실황 음반 『12년만의 만남』에서 하덕규는 감정을 자제치 않는다. 이런 게 라이브 앨범의 묘미다. 상상만 했던 「얼음 무지개」 라이브는 고맙고, 또 고맙다.

밴드에서 전임 보컬리스트를 능가했던 후임 보컬리스트는 얼마 되지 않는다. 짧게 생각해도 아이언 메이든의 브루스 디킨스만 생각난다. 박혜경이 나간 더더는 앙꼬 없는 찐빵으로 변할 줄 알았는데, 한희정이라는 존재를 만나 음악성을 인정받기에 이른다. 이런 걸 보고 전화위복이라 한다.

독후감을 정리하며 산만한 정신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봄여름가을겨울의 베스트 중 연주 앨범을 들었다. 김현철, 빛과 소금, 김현식, 봄여름가을겨울을 듣다 보니, 문득 우리 대중음악사에 동아기획은 참으로 보석같은 존재라고 느껴진다.

오래된 일이지만 한때는, 생면부지의 가수라 할지라도 “서라벌 레코드”나 “동아기획”이 찍혀있으면 망설임 없이 음반을 집어 들었다.

윤상의 성장은 우리 대중음악사의 축복이다. 윤상이기에 모텟같은 음악도 살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1집』은 그가 내민 첫발이고, 어떤 데뷔작보다도 매력있다.

언제고 『뮤직톱10』에 「앉은 자리에서 백번 이상 들을 수 있는 노래 Top 10」을 쓰게 된다면 무당의 「내 사랑은」은 꼭 들어간다. 지금에서 이들의 앨범이 CD로 나온 게 기적처럼 보인다. 1집은 너무도 귀여운 앙증맞은 노래들로 채워져 있다.

많이 졸린데도, 노래 하나하나가 행복해 자꾸 잠을 쫓는다.


덧글

  • 신랑각씨 2009/02/13 09:07 # 답글

    시인과 촌장 라이브가 있었군요. 그것도 반가운 일인데 하덕규과 신앙의 품에서 잠시 나와 대중과 만났었다니 더욱 기쁘네요.
  • 음반수집가 2009/02/13 12:33 #

    예, 2000년 초반에 나온 앨범입니다.
    좋다기보다는 매우 즐거운 음반이기도 합니다.
  • 다이고로 2009/02/13 09:13 # 삭제 답글


    그렇죠, 검정치마 좋더군요.
    들을때마다 오오오 만만치 않은 맛에
    탄복하며 탐미합니다..ㅋㅋㅋㅋ

  • 음반수집가 2009/02/13 12:34 #

    2집에서 확실히 보여주면, 평생 충성하려 작정 중입니다.

    이따 봐요(김미화 버전입니다 ^^)~~
  • 지기 2009/02/13 13:35 # 답글

    저도 검정치마 너무 좋습니다~~ 제발 뉴욕으로 도망가 버리지 말기를요~~

    저도 모텟 음반 들어보고는 싶은데 아무리 윤상이라해도 너무 어려울 것 같아 조금 망설이고 있네요^^;
  • 음반수집가 2009/02/17 16:03 #

    앨범 열 장 낸 뒤에 가는 건 상관없고요.
    뉴욕에서 내는 것도 상관없습니다.

    향후 몇 장의 앨범으 더 만나고픈 바람뿐입니다.

    모텟, 평가가 극단적인데요. 지기님이라면 재밌을 듯 싶네요.
  • 너털도사 2009/02/13 13:53 # 답글

    아 외인부대도 CD가 있었군요... 추억이 새록새록....
    임재범=외인부대 죠.. 시나위는 좀...
  • 음반수집가 2009/02/17 16:03 #

    ㅋㅋ~~ 외인부대쪽이 좀 그렇긴 그래요.
  • 스핑클쓰 2009/02/13 14:57 # 답글

    루시드 폴 좋음 ㅠ ㅠ
  • 음반수집가 2009/02/17 16:03 #

    좋음... 2표 던져요.
  • Ginger 2009/02/13 22:25 # 답글

    김현철 2집은 저도 매우 좋아하는 음반이에요. 1집을 아직 구하지 못해서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정말 대단한 음반인 것 같아요.
    윤상은 정말 존경할 수 밖에 없는 뮤지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 모텟 음반이 나오자마자 구매해서 들어봤는데, 정말 대단하더라구요. 역시 어떤 음악을 하던 거장은 거장인것 같습니다.
  • 음반수집가 2009/02/17 16:04 #

    1집 구하시는 행운이 오시길~

    역시 모텟 재밌게 들으셨군요.
  • 여름 2009/02/14 11:26 # 답글

    가요음반-전 가요라는 어감이 좋습니다.
    을 많이 보유하고 꾸준히 듣고 감상을 적어내는 수집가님이 멋집니다.
  • 음반수집가 2009/02/17 16:04 #

    감사합니다.^^
  • 랜디리 2009/02/23 03:41 # 삭제 답글

    누구라도 토 달기 뭐한 전임을 능가하는 후임으로 생각나는 게...

    1. 제임스 라브리에 (드림 씨어터. 1집은 찰리 도미니시라는 아저씨였죠)

    2. 러셀 앨런 (심포니 X라는, 들으시는 스타일과는 약간 거리가 있지만 꽤 훌륭하고 유명한 밴드입니다)

    조금 애매하지만 전임을 능가하는 후임이라면

    1. 존 코라비 (머틀리 크루, 한 장이지만 가히 경악할 만한 보컬이었습니다. 머틀리 크루 이후 자기 관리가 제대로 안 돼서 결국 머틀리 크루의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만이 제대로 된 레코딩이었다는 게 아쉬움)

    2. 새미 헤이거 (반 헤일런)

    3. 로니 제임스 디오 (블랙사바스)

    뭐 이 정도가 갑자기 생각나네요 ^^;

    좋은 하루 되세요 =ㅂ=
  • 음반수집가 2009/02/23 17:50 # 답글

    예, 일정 부분 동의합니다.
    랜디리님도 좋은 저녁 시간 되세요.
  • 어쩜그래 2009/05/18 10:05 # 답글

    김현철님의 공연이 5월 23일 MTV The Stage에서 열립니다. 작은 소극장 분위기의 스튜디오에서 현철님의 감성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기회!!! 링크를 눌러 바로 응모하세요 :) http://www.mtv.co.kr/thestage/applicant.php?seq=200905230
  • 음반수집가 2009/05/19 01:33 #

    예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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