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되지 않았던 1인자 : 내사랑 015B 음악이야기


80년대 우리 대중음악 역사에 절대 지울 수 없는 뮤지션 둘이 있었다. 김현식과 전인권으로 이들은 구자형의 말처럼 물결과 불꽃으로 대비되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개성을 가진 가수였다. 하지만 김현식은 하늘로, 전인권은 약물로 치달으며 전설은 마모되고 만다.

아주 가끔이지만 역사가 아름다운 건 그때의 시절이 반복될 때다. 80년대 후반, 약관의 나이로 세상에 나와 90년대 우리 대중음악을 지배하는 또 다른 두 명의 뮤지션이 등장한다. 바로 정석원과 신해철이다. 이들은 무한궤도라는 같은 선상에서 출발했지만 김현식과 전인권처럼 서로 다른 길을 갔고 이는 우리 대중음악의 축복이 됐다.

신해철이 마초적이고 공격적이었다면, 정석원은 냉정하고 수줍었다. 신해철은 대중과 평단의 지지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다진 반면, 정석원의 공일오비는 음반 판매에는 성공하지만, 평단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는 실패(?)한다.

안타까운 건 동시대 음악인들보다 두세 발 앞서갔던 공일오비에 대한 평가절하다. 정석원은 신해철의 그림자였기 보다는 달의 그것처럼 우리 대중음악의 커다란 한 면이었다.

애초 공일오비의 출발은 무한궤도, 더 정확하게는 신해철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조형곤은 무한궤도의 원년 멤버였고, 정석원은 무한궤도의 데뷔앨범에 참여했다. 공일오비의 이름 또한 공은 ‘무’, 일은 ‘한’, 오비는 오빗(orbit)으로 ‘궤도’를 뜻했다. 즉, 대중은 공일오비를 신해철 없는 무한궤도의 변종으로 보았지, 공일오비 자체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시간은 오해를 해소한다. 1집의 「텅빈 거리에서」가 알려지며 대중은 공일오비를 기억하기 시작했고, 버릴 곡 없는 2집을 통해 신해철의 그림자를 지워버린다. 3집은 이들의 독립선언문이었고, 이에 대한 대가로 부와 명예를 얻는다.

또한 4집을 통해 1, 2집의 빈약한 사운드를 개선하고 3집의 음악을 강화시켜 명실부히 “공일오비”라는 아이콘을 정립한다.

이들은 완성된 음악과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다. 5집의 복고와 6집의 실험을 통해 과거의 음악, 미래의 음악이라는 새로운 유형을 개척한다. 이는 우리 대중음악에 있어 10년을 앞서간 시도였다.

정석원이, 공일오비가 실로 대단했던 건 기존 우리 음악의 정형적인 틀을 깼다는 점이다. 특히 언론에서 이름 지워준 “객원가수”제는 독특했다.

정석원은 가수의 목소리도 하나의 악기로 받아들였고, 한 가수에게 의지해 노래하는 음악적 한계를 벗어나려 했다. 흔히 밴드의 주인공은 보컬에 집중되는데 이점을 과감히 없앤 것이다. 덕분에 윤종신, 김태우, 이장우, 김돈규 등은 공일오비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고, 윤종신은 개인의 역량이 더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90년대 공일오비의 음악이 젊은 층에게 사랑받았던 건 무엇보다 X세대의 사랑을 담은 노래들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 노래는 공일오비에게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애절하고 발랄한 노래 때문에 인기를 유지했지만 평단은 그들의 가벼움만 부각시켰다.

그러나 이 또한 공일오비의 단면만 본 평가였다. 이들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환경운동이 시작되기 전, 「4210301」과 「적 녹색인생」을 불렀고, 언론과 교통문제를 꼬집은 「제4부」와 「교통코리아」를 만들었다. 공일오비 이전에, 혹은 동시대에 이들의 문제제기만큼 강력한 노래는 없었다.

음악 또한 획기적이었다. 록과 발라드는 기본이었고, 랩, 하우스, 아카펠라, 리메이크, 인더스트리얼 등 다양한 장르를 한국이라는 제한된 풍토에서 거침없이 실험했다.

공일오비는 결코 한 자리에 안주하지 않았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려 했고, 남들이 하지 않았던 음악을 했다. 지난 2006년, 10년 만에 나왔던 이들의 7집을 들으며 공일오비의 존재감만으로도 행복했다. 우리 대중음악의 축복이었던 공일오비, 나는 아직도 이들을 사랑한다.



덧글

  • focus 2008/06/21 17:57 # 답글

    1집의 '때늦은비는'이라는 곡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LP 가 있었을텐데 집에가면 찾아봐야겠네요..^^

  • 음반수집가 2008/06/23 13:43 #

    LP 구경 잘했습니다. ㅋㅋㅋ~~
  • Sion 2008/06/21 23:38 # 답글

    저도 4210301로 공일오비를 좋아하기 시작해선지 가볍다고, 사랑타령만 한다고 평가절하 당하는 걸 보면 좀 위화감이 들더군요;; 저야 물론 무한궤도에서 뻗어나온 가수들을 좀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면이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요_no
  • 음반수집가 2008/06/23 13:43 #

    ^^ 동감해주셔 감사합니다.
  • 코코넛 2008/06/23 10:56 # 삭제 답글

    올만에 좋은 글을 보니 좋네요. 저 또한 어리숙하게 부르던 "때늦은 비"가 가장 생각납니다
  • 음반수집가 2008/06/23 13:44 #

    금요일날 먼저 도망가서 내내 마음이 걸리네.
    고마워~
  • 2008/07/03 04:00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또 하나의 공일오비 팬을 만나니까 너무 반갑네요. 음반수집가님도 공일오비 팬이셨군요 ^^

    그런데 본문 중에 "공일오비의 이름 또한 공은 ‘무’, 일은 ‘한’, 오비는 오빗(orbit)으로 ‘궤도’를 뜻했다." 라는 말이 있는데 공일오비는 사실 그런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 아니라 아무 뜻없이 지어진 말인데 나중에 사람들이 이름을 그렇게 분석하면서 뜻을 자의적으로 붙인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결국엔 2집에 자신들 나름대로 의미를 붙여 空一烏飛라는 '하늘을 나는 한마리 까마귀';;라는 뜻을 그제서야 붙이게 된 거구요.

    무한궤도에서 파생된 이름이라는 오해가 워낙 많아서요.. 괜히 지적(?) 한 번 하고 갑니다. 언제나 눈팅하며 글 잘 읽고 있습니다 ^^
  • 음반수집가 2008/07/04 12:37 # 답글

    재밌게 읽어주셔 고맙습니다. ^^

    공일오비 초창기 활동 당시 정석원이 무한궤도와는 아무 관계 없다고 말하긴 했는데요.

    2006년 나온 "90년대를 빛낸 명반 50"이라는 책에서 정석원이 인터뷰를 하며 무한궤도에서 파생된 이름이라고 인정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더 궁금하시면 원문을 인용해 드리겠습니다.

    자주 놀러오시고요. 앞으로도 좋은 말씀 부탁드려요~~~~
  • 피이슬 2008/07/08 23:08 # 삭제 답글

    오랜만에 오네요 ^^
    잘 계시죠?
    아 볼때마다 부러운 앨범들... 정말 부럽네요..
    내년엔 꼭 사야지...
  • 음반수집가 2008/07/09 10:47 #

    너무 부러워 마세요.
    행운을 꼭 빌어요.
  • MK 2008/12/30 22:49 # 삭제 답글

    아..015B 팬으로서 왠지 모를 반가움.. 동질감..ㅎ

    저도 저 위 사진의 앨범들이랑.. 7집 나오기 전 리믹스 앨범 같은 거랑 라이브 앨범이랑 장호일 앨범 등등.. 가지고 있거든요^^;

    015비 참 좋죠.. 아까도 오랜만에 1집과 6집을 들었습니다
    전 윤종신의 옛날 그 여린 목소리를 좋아해서 또 듣고 싶은데..
    이젠 그렇게 안부르나못부르나 모르겠네요 ^^
  • 음반수집가 2008/12/31 03:01 #

    글 반갑게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아마 예전처럼 부를 수는 있을 것 같은데요.
    예능 막둥이로 맹활약중이라서 그 모습 보기 힘들 듯 하네요. ^^
  • 건반쥔놈 2009/08/16 13:17 # 답글

    문제의 파이널 판타지, 클러스터 vol.1, 베스트 앨범을 제외한 공일오비의 모든 앨범(다 초판?!)을 갖고 있습니다... 솔직히 굉장히 좋아하는 그룹으로써... 8집만을 손꼽아 기다린답니다. ㅎ 저도 4210301... 좋아하기 때문에, 제가 연재하는 소설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잊혀지는 건 슬픕니다. 아무도 찾지 않기 때문이죠.
    특히 90년대 초반은... 더.

    아픔의 역사...
  • 음반수집가 2010/04/05 09:53 #

    답글 무지 늦었습니다.

    언제고 다시 발굴될 겁니다.
  • 신군 2012/12/06 09:13 # 삭제 답글

    4년 전 글이긴 합니다만 늦게나마 잘 읽었습니다. 신해철과 정석원의 관계는 참 미스테리하군요. 인터뷰에서 신해철이 정석원 재수 없다고 씹는 건 봤었는데. 그 둘이서 절친 노트를 찍던가 라디오 스타라도 한번 나와줬음 좋겠습니다. ㅋㅋ
  • 음반수집가 2012/12/13 10:57 #

    저는 둘이 같이 음반 한 장 발매했으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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