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 가져가고 싶은 음반 20장 뮤직톱10


제목은 선정적이고 죽는 마당에 욕심도 많다. 죽는다고 생각하니 열장은 억울해 스무 장으로 정했고, 우리 음반으로 제한했다. 기회 되면 외국 편을 꼽아보련다.

선정 기준은 전혀 없고 내 마음대로 골랐다. 극단적인 상황이 있지 않은가. “너 내일 지옥가야 돼, 다행히 염라대왕이 유황지옥에서 불에 타더라도 음악은 들을 수 있도록 해준데. CD 스무 장 챙겨라.”

내일은 고달플지라도 이런 고민은 괴로움보다는 즐거움이 앞선다. 지옥길도 잊은 채 음반 20장을 골랐다. 15장까지는 진도가 쉽게 나갔지만 나머지 다섯 장이 힘들었다.

김민기의 박스세트를 사지 않았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작업이었다. 김민기를 들으며 구상했던 순위 놀이를 완성할 수 있었다.


1위 김두수, 『4집 : 자유혼』(리버맨뮤직, 2002)
2000년대 나온 김두수의 『4집』은 김두수 개인의 성과가 아닌 우리 대중음악의 밀집된 역사다. 이런 음악을 들으며 최초로 생기는 욕망은 음반을 계속 사고 싶다는 것이고, 그 다음은 안도감이다.



2위 장필순, 『6집 : Soony』(신나라뮤직, 2002)
20장의 앨범 중 여성의 음반은 장필순 딱 한 장이다. 한영애의 탈락은 나 또한 의외였고, 이소라의 『6집』은 선전했지만 다음 기회로 등판을 미뤘다. 장필순 『6집』처럼 편안함을 가장한 치열한 음악이 있을까. 장필순은 이 앨범을 통해 노래를 자기 마음대로 부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런 내용은 한 순간에 오지 않는다. 이미자의 수십년 행보에 비할 성과다.

3위 엄인호, 『1집 : Sings The Blues』(서라벌레코드, 1990)
엄인호 『1집』은 존재감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 바라만 봐도 듬직하고 언제나 믿음을 배신하지 않는다. 야구선수로 치면 두산의 안경현이고 한화의 송진우다.



4위 신중현과 엽전들, 『1집』(PonyCanyon Korea, 1974/2003)
이 음반은 지구반이 아닌 2003년 발매된 포니캐논반이어야 한다. 원초적인 음악이 원테이크로 치밀하게 녹음됐고, 거친 질감 속에 완벽함이 숨어 있다.



5위 김민기, 『1집』(서울레코드, 1971/2004)
여전히 이 앨범의 CD 발매를 꿈꾼다. 김민기는 1970년대 김지하에 비할 우리 대중음악의 성과이건만, 김민기를 안을 수 없는 우리 음악시장의 왜소함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6위 공일오비, 『2집』(지구레코드, 1991)
공일오비는 신해철(넥스트)과 더불어 1990년대 작가주의를 양분했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이들의 실험성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7위 변진섭, 『2집』(거성레코드, 1990)
요즘은 아무나 노래를 잘 해서 가수와 대중이 구분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TV에 맞게 얼굴을 고친 후, 어지간히 노래만 하면 가수다. 이럴 때는 음악에도 기준이 있었으면 좋겠다. 노래는 변진섭 이상, 작곡은 윤상 이상. 써놓고 보니 위험하지만 진심이다.


8위 조용필, 『7집』(지구레코드, 1985)
변함없이 조용필의 앨범은 『7집』이 가장 좋다. 거듭 말하지만 모든 계층과 세대가 즐길 수 있는 가수는 조용필이 유일하다. 더불어 우리 대중음악이 지금껏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이유는 제2의 조용필이 없기 때문이다.



9위 봄여름가을겨울, 『Live』(동아기획, 1991)
봄여름가을겨울의 1집, 2집 두 장을 넣을 수 없으니 자연 대안은 라이브 앨범이었다. 봄여름가을겨울을 떠나 우리나라 실황앨범의 모범이다. 쟁쟁한 뮤지션들이 세션으로 참여했고, 봄여름가을겨울 최고의 시기를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음반이다.


10위 김광석, 『다시부르기 2』(킹레코드, 1995)
김광석의 『다르부르기 2』는 김광석의 목소리 하나만으로 서로 다른 성질의 것들을 통일해버렸다. 조동익의 편곡도 좋지만 김광석이기에 가능했다. 지금 나오는 쓰레기같은 리메이크 앨범들과 비교하고 싶지 않지만, 차이는 단 하나다. 김광석은 영혼으로 노래를 부르고, “영혼”이라는 낱말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든 말이다.


11위 김현식, 『6집』(동아기획, 1991)
수년간 김현식 앨범 중 가장 좋아했던 『4집』을 밀어내고 영예를 차지했다. 사실 지금도 심정적으로는 『4집』이 좋지만 물린 감이 있다. 『6집』은 「내 사랑 내 곁에」에 이전에, 노래 부르는 자세만으로도 감동스럽다.



12위 미선이, 『Drifting』(라디오뮤직, 1998)
우리 인디 음악 최고의 성과. 노래를 듣지 않아도 “미선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촌철살인 「진달래 타이머」는 압권이다.



13위 신촌블루스, 『2집』(서라벌레코드, 1989)
김현식, 엄인호, 이정선의 조합. 동시대에 이들의 공연을 본 이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김현식은 가고 없지만 엄인호와 이정선의 재개를 꿈꾼다.



14위 송골매, 『1집』(지구레코드, 1979)
활주로의 데뷔반과 송골매 『1집』, 『2집』이 3파전을 벌인 끝에, 송골매 『1집』을 꼽았다. 『7집』에도 눈이 가고, 구창모 없는 송골매를 선택한 건 아쉽지만 그만큼 지덕엽의 기타가 맹렬했다.



15위 한대수, 『12집 : 욕망』(서울음반, 2006)
『무한대』이후, 한대수는 화석이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대수는 『욕망』을 통해 인생에는 반전이 있다는 희망을 증명했다. 늙음은 세월을 원망치 않고, 음악을 남겼다. 이 앨범을 통해 비로소 한대수를 존경하게 되었다.



16위 신윤철, 『3집 : 명태』(삼성뮤직, 1995)
여전히 이 음반을 구하지 못했다. MP3의 질감마저도 넘어선 이 앨범을 언제 즈음 제대로 들을 수 있을까. 나는 지금도 「서로 다른」을 앉은 자리에서 백 번 이상 들을 수 있다.



17위 산울림, 『11집』(지구레코드, 1986/1998)
산울림 앨범 중 한 장, 정말 고르기 힘들었다. 심정적으로 박스세트를 넣고 싶었지만 이 앨범을 택했다. 『11집』은 김창훈, 김창익이 참여하지 않은 앨범이다. 그럼에도 신새벽에 울며 들었던 「그대 떠나는 날 비가 오는가」와 「안녕」의 잔상은 여전히 강렬하다. 「내가 고백을 하면 깜짝 놀랄꺼야」는 덤이다.


18위 이정선, 『7집 : 30대』(시완레코드, 1985/1998)
내 30대가 지속되는 한 이 앨범은 당연히 나와 함께 간다. 자켓 이미지만으로도 5할 먹고 들어간다.




19위 블랙홀, 『4집 : Made In Korea』(EMI, 1995)
시나위, 부활, 넥스트와 난전을 펼친 끝에 살아남았다. 과소평가된 블랙홀, 그들의 작가주의와 지속성은 언제고 꽃을 피울 것이다.



20위 전인권, 『Best』(서울음반, 1993)
들국화보다도, 전인권의 명반보다도 여전히 이 앨범에 끌린다. 「사랑한 후에」와 「그것만이 내 세상」은 이 앨범 버전이 가장 좋다. 언제 즈음 철없는 우리 형님의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을까.


덧글

  • focus 2008/04/22 14:50 # 답글

    전 우리나라 씨디는 9장있는데, 그중전 달랑1장..
    뉴푸른하늘꺼만 챙기겠습니다..^^
  • 음반수집가 2008/04/22 15:24 # 답글

    포커스님이 말씀하시니 뉴푸른하늘 땡깁니다. ㅋ~~
  • 2008/04/22 16:3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음반수집가 2008/04/22 18:10 # 답글

    비공개님 // 관심가져주셔 감사합니다.
  • 서울하늘 2008/04/22 18:16 # 답글

    이야..저도 꼭 해보고픈 포스팅입니다... ^^
  • Zikk 2008/04/22 22:11 # 답글

    엽전들 포니캐년반이 가지고 싶어지네요~ 저는 지구버젼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 누피 2008/04/22 22:49 # 삭제 답글

    안 눌러볼 수 없는 글제목과 개성 넘치는 선택, 그리고 고개 끄떡여지는 평가글. 3박자가 고루 갖추어진 멋진 글이군요. ^_^ 덕분에 노래 몇 곡 골라 들어봅니다.
  • dreamout 2008/04/22 23:57 # 답글

    제가 아는 앨범은 몇 없어도 보기 좋네요.
  • 음반수집가 2008/04/23 01:47 # 답글

    서울하늘 // 부담없이 하시면 됩니다. ^^ 한번 기대해 볼께요.

    Zikk // 어디까지나 제 경우인데요. 저는 지구반으로는 감흥을 전혀 느끼지 못하다가, 포니캐논반을 들으니 180도 바뀌었습니다. 거칠고 강합니다. 기회 닿으시길 바래요.

    누피 // 3박자 칭찬, 부끄럽지만 기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dreamout // 감사합니다. 저중 몇 개 더 친해지길 바래요.
  • neungae 2008/04/23 11:10 # 답글

    인디음악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었는데...
    수집가님이 꼽은 'drifting' 들어봐야 겠습니다..
    꼬옥..오늘도 좋은 하루입니다..:)
  • 생충 2008/04/23 11:53 # 답글

    죽을때 가져가고싶다라 우앙 ... 옛날게 많은데 근처에서 팔고 있으려나 ;ㅁ;
  • 스카이워커 2008/04/23 13:10 # 답글

    장필순 6집 설명보고 너무 듣고 싶어졌어요. 배철수씨는 얼마전 음악캠프에서 임진모씨랑 같이 1집 낸 이후 2집의 방향에 대해 수다 떠시던데, 1집 앨범 보니 그 때 언급되던 내용들이 생각나서 입가에 미소가 :)
    미선이랑 공일오비 저도 찜이요. 변진섭 앨범은 조금 의외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면 그 앨범에서 버릴 곡 하나 없이 다 좋아했던 그때가 있었더랬죠...
  • whisa 2008/04/23 13:15 # 답글

    미선이 좋죠... 올해도 개같은 세상에 또 진달래가 피네요!
  • 음반수집가 2008/04/23 15:01 # 답글

    neungae // 1.5집은 여전히 팔고 있습니다. 절판되기 전에 사서 들어보시길 권해요. 1집 곡은 모두 들어있고, 보너스 트랙도 있으니 더 좋을 수 있습니다.

    생충 // 저중 구하시기 힘든 게 많을 거애요. 그래도 관심을 가지신다면 행운이 찾아올거라 믿습니다. 굿럭!!!

    스카이워커 // ^^ 감사합니다. 장필순과 미선이는 구입가능하실 겁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리스트였습니다. 예쁘게 읽어주세요. ㅎㅎ~~

    whisa // 예, 올해도 어김없이 정직하게 피었네요.
  • 은비뫼 2008/04/23 16:59 # 답글

    블랙홀 정말 좋아합니다. 1집도 좋지만 4집도 정말로!! 제가 학교 다닐 때 4집이 나왔죠. 그래서 다시 1집을 꺼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
  • 음반수집가 2008/04/23 18:06 # 답글

    은비뫼님은 항상 제 상상력을 초월하십니다. ^^
    블랙홀에 한표 주셔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 bossanova 2008/04/23 20:08 # 답글

    13번 신촌블루스 2집에 실린 봄.여름.가을.겨울의 노래가 참 좋았는데...이젠 앨범이 어디 가버린지 찾기도 힘드네요.
  • 음반수집가 2008/04/24 09:50 # 답글

    또 하나의 내가 있다면, 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정서가 참 쓸쓸하고 담백하죠.

    받은만큼(?) 돌려드려야 하는데, 언제고 기회가 되겠죠.

    좋은 하루 되세요.
  • 너털도사 2008/04/24 11:06 # 답글

    우와.. 다 듣고 싶습니다...
    신촌 블루스 2집은 정말 꼭 가지고 가고 싶구요.
    용필이 형님 7집은 가장 뭐랄까 다이나믹할 때?의 액티브?한 음악들이 있는 앨범이죠...
  • 음반수집가 2008/04/24 21:12 # 답글

    2집 절판돼 구하기가 힘들죠. 참 좋은 앨범입니다.

    조용필 7집 평은 정확하십니다. ^^
  • 추유호 2008/04/25 01:07 # 답글

    20장 밖에 가져갈 수 없다니 슬픕니다. 흑. 500장으로 늘려주세요 ㅎㅎ
  • 음반수집가 2008/04/25 14:10 # 답글

    500장은 너무 무겁고, 염라대왕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ㅠㅠ

    언제 500장 한 번 꼽아보겠습니다.
  • 젊은미소 2008/04/27 07:52 # 답글

    신촌 블루스 1집인가 2집 나올 때 당시 공연 가서 본 적 있었는데요.. 정작 김현식은 나오질 않았습니다. 엄인호가 김현식이 맨날 빵꾸낸다고 불평하던 기억이 지금도 나네요. ^^ 그땐 술 먹고 몸이 않좋다고 한다는 얘기가 변명처럼 들렸는데.. 그 양반이 그렇게 갈 줄은 몰랐죠. 대신 한영애가 나왔더랬는데, 와 정말 대단했던 기억이 지금도 나네요.

    비슷하게 들국화 1집 나오고 파고다에서 마라톤 공연 하던 시절 들국화를 봤던 세대들에게는 들국화 1집은 절대적인 존재로 자리잡고 있답니다. ^^ 흔히 가요 명반 꼽을 때 그 앨범이 1위를 하는데는 선정하는 사람들의 개인적 경험이 작용하는걸 겁니다.

    개인적으로 조용필은 4집하고 5집을 한장으로 만들고 상대적으로 좀 약한 곡 몇 곡 잘라내고 나면 정말 명반이라 부르기 아깝지 않은 앨범이 될 것 같은데.. 뭐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간 일이니 되돌릴 수는 없으려니 합니다.
  • 음반수집가 2008/04/29 11:30 # 답글

    미소님 // 신촌블루스, 들국화 공연 모두 보셨군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 있으시군요. 토달지 않겠습니다. 부러울 따름입니다.

    강헌은 조용필 4집을 우리나라 최고의 앨범으로 꼽았더군요. 미소님 말씀 들으니 4집과 5집을 합쳤으면 최고의 앨범이라는데 동의가 됩니다. ^^

    언제 꼭 미소님 댁에 방문해서 음악만담 나누고 싶네요.
  • FenderGT 2008/05/01 01:39 # 삭제 답글

    제가 죽을 때 가져갈 앨범들의 1위는 김광석 다시부르기인 것 같아요...영혼으로 부른다는 말 정말 공감합니다
  • 음반수집가 2008/05/01 14:55 # 답글

    FenderGT // 다시부르기 1인지 2인지, 아니면 전부인지 궁금합니다. ^^

    공감 감사합니다. 참, 닉네임 바꾸셨나봐요.
  • kang-kun 2008/05/01 16:25 # 답글

    우어.. 잘 봤습니다.
    산울림이랑 송골매는
    소장해야 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만-
  • 음반수집가 2008/05/02 09:21 # 답글

    산울림은 절판, 품절돼 구하시기 힘들겁니다.
    송골매도 같은 길을 걷기 전에 얼른 구하시기를~~
  • 3fisher 2008/06/05 15:57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음반수집가님. 3fisher입니다. ^^
    이 포스트가 피쉬에 공개되었습니다.
    김현식, 엄인호, 이정선이 함께했던 공연을 보러다니느라 분주했던 그 때가
    생각나네요. 파랑새극장 맨앞에 앉아서 김현식을 올려다보며 어쩜저리도
    잘생겼을까...감탄하기도 하고. ^^;;;
    좋은소식.(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2096257)
    음악이 들리는 듯한 글. 잘 보았습니다.
  • 음반수집가 2008/06/08 12:29 #

    예, 그 기사 저도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후추상사 2011/07/17 05:00 # 삭제 답글

    참 멋진 리스트네요. 제 블로그에서 연재 기획중인 "무덤까지 가져가고 싶은 나만의 음반들"과 통하는 글인 것 같은데 제가 출처를 밝히고 소개해도 될까요? 한국음반들을 소개하는 블로거가 거의 없기에 드리는 부탁입니다. ^^
  • 음반수집가 2011/07/19 10:29 #

    1. 언제나 그렇듯이 출처만 밝히시면 무방합니다.

    2. 한참 전꺼라 리스트가 많이 변동됐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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