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테고리
이글루 파인더
최근 등록된 덧글
저는 09년앨범들에 애정을..
by 류사부 at 10:51 노장들의 신보가 우르르 .. by 지기 at 10:24 꿈의대화님 못보셨군요... by 지기 at 10:22 추위가 조금은 가시지 않.. by 음반수집가 at 08:19 봤습니다. 그냥 기 막히.. by 음반수집가 at 08:18 ㅋㅋ~~ 즐감하세요. by 음반수집가 at 08:18 아, 음반 구경 삼매경에.. by 음반수집가 at 08:18 앗..저도 갑자기 밥 말리.. by 코끼리 at 12/16 광화문 핫트랙스랑 교보.. by 유투왕빠 at 12/16 저는 저 EP를 잘 듣지 않.. by 류사부 at 12/16 태그
|
2005년 07월 26일
글을 써주기로 약속을 했는데 여러 번 기회를 놓치다 보니 글발이 받지 않는다. 근래 무척 피곤하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지친 나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야밤에 잠을 못자고 다시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지금의 한국대중음악판에 대해 전체적으로 알지 못하고, 그리 큰 관심도 없다. 이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내게만 있는 게 아니다. 한국음악산업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데 일조를 했다. 요즘은 오로지 예전 음악만 줄기차게 듣고 그 음악들에 즐거워한다. 나도 나이를 먹어서인지 아니면 들을 음악이 없어서인지 고전들이 재발매되는 것에만 관심을 갖고 근래 발매되는 앨범에는 그리 큰 의욕이 없다. 그래도 요즘 발매된 앨범을 몇 장 구입하긴 구입했다. 서태지, 스왈로우, 어어부 프로젝트의 싱글 등인데 스왈로우는 더 들어봐야 할 것 같고 어어부 프로젝트는 다시 들을 것 같지 않다. 두 번째 곡인 「기사식당」만이 어어부 특유의 냄새가 났을 뿐 나머지는 별로 재미가 없다. 단지 「안성철씨」라는 곡은 노래 이전에 하나의 새로운 시도라는 호의적인 해석을 내리고 싶다. 하여간 어제 밤 잠시 책을 읽으며 들어본 결과 이번이 마지막으로 듣는 거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돈이 아깝다는, 귀를 버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명분 없이 주장하는 문화적인 다양성의 확보라는 빈약한 논리로 이런 음악도 있어야 된다, 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한쪽으로 죽어가는 음악판에 서태지가 『7th Issue』라는 앨범을 들고 돌아왔다. 여전히 그는 끝없는 관심과 화제를 뿌린다. 음악 이전에 그는 문화 아이콘이고 하나의 문화권력이다. 그가 말하면 공륜의 사전심의제도도 귀를 기울인다. 줄기차게 외로이 싸워온 정태춘의 공을 폄하하자는 말이 아니다. 서태지가 「시대유감」으로 반기를 들지 않았다면 음반사전심의제도 폐지는 요원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출판․영화의 사전심의제도가 존재하고 창작의 자유를 막는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해 대통령이 평양을 가면 합법이고 우리같은 범인이 가면 불법이다. 정부에서 인공기를 계양하면 국제적인 행사이고 개인이 달면 안기부에 끌려간다. 그러니 마음놓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만세!!”라고 외칠 수가 없다. 이러면 생각은 막히고 표현은 한쪽으로 편향돼 문화와 사회는 기형적으로 변한다. 오로지 얼짱과 화폐가 지배하고 각광받는 요상한 시대가 되는 것이다. 예술에 있어 표현의 억압은 그 시대의 자화상이다. 모든 예술가는 상상할 자유가 있고 그것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 그것이 도덕에 어긋나고 인간의 가치관에 반할지라도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예술의 진실성은 공륜이, 정부의 정책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에 살고 있는 대중이 판단한다. 그 판단에 지름길을 제시한다는 어리석은 우월주의는 버려야 한다. 지금 인터넷상이나 대중매체에서는 끊임없이 서태지의 새로운 음악과 그의 행동때문에 논란이 일고 있다. 물론 가수는 음악으로 평가를 받아야지 그 외적인 것은 부차적인 것일 게다. 그러나 대중음악은 아티스트의 행위까지도 그 시대를 반영한다. H.O.T나 이효리는 한때의 유행이고 추억일 수 있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결코 유행과 추억을 폄하하는 말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의 창작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상업적으로 팔기 쉬운, TV에 자주 출현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한다. 들으면 들을수록 새 맛이 나는 음악을 만들지 못하고 1회성 음악에 치중한다. 과연 지금 가수들의 생명력은 얼마나 될까. 물론 이들의 음악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진실성의 결여는 대중을 속이는 것이고 그 결과는 대중들의 판단으로 결정 난다. 서태지가 대중음악에서 화두가 되는 이유는 한국대중음악이 서태지를 계기로 서태지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적어도 서태지 이전 가수들의 노래가 대중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예술성에 대한 지향과 대중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어법이 잘 어우러져 있었다면 서태지 이후에는 서태지의 성공사례만을 마케팅 하여 뜨기 위한, 돈을 위한 음악으로 변모했다. 즉 음악내의 자기 창조와 표현이라는 예술에서 음악산업이라는 자본의 논리로 전환되기 때문에 그 경계에 있었던 서태지가 한국음악사의 한 정점이 된다. 서태지 이후 음반기획사는 화면발 잘 받는 미소년과 미소녀들을, 공식화되고 한번 들으면 달라붙는 계산된 음악으로 훈련시켜 가요계의 전면에 내세웠다. 서태지의 성공사례를 음악적인 곳에 투자한 게 아니라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률에 적용시킨 것이다. 이러니 껍데기는 훌륭하지만 알맹이는 공허하다. 이들의 이런 골빈 음악이 성공한(?) 이유는 지금의 미디어 시스템이 대중들과 호흡하기보다는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흘러가기 때문에 가능했다. 더불어 언론매체는 영광스럽게 우리의 문화를 죽이는 1등 공신이 되었다. 언론매체의 문제점과 그 대안에 대해서 지껄이고 싶은데 이러면 가뜩이나 머리 아픈 글, 더 재미없어질 것 같다. 고전의 참맛은 100년이 흘러도 새롭고 정겹고 새로운 시대에도 읽힌다는데 큰 의미가 있고 그 시대의 창작에 텍스트로 활용될 수 있다는데 가치가 있다. 한쪽으로 흘러가는 대중음악판에 사고의 전환을 이뤄준 서태지가 있어 다행이다 싶다. 그의 음악을 즐겨듣지는 않지만 그의 성과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도 예전 「난 알아요」에 맞춰 회오리 춤을 추었다. 서태지 음악이 100년 뒤에도 통할지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혁신적이고, 그의 마케팅과 음악은 여전히 문화적인 보고이다. 서태지는 음악의 의미에 충실하고 성공에 안주하지 않는다. 그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비난과 찬사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대안은 머릿속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서태지의 시행착오는 그래서 소중하다. 일찍이 치열하고 자기반성에 철저했던 시인 김수영은 100년 후는 몰라도 반년 정도의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 했다. 그의 치열성과 자기반성은 지금까지도 한국문학에 유효하다. “시의 예언 : 나는 사후 100년 후에 남을 시를 쓰려고 노력할 수는 없지만 작품이 끝난 후 반년 정도의 앞을 예언할 만한 시는 쓰고 싶다. 반년 정도의 예언이지만 여기에도 피해가 많다. 원래가 예언자란 들어맞을 때는 상은 안주고 안들어맞을 때는 화형을 받는다. 아냐, 그는 들어맞을 때도 안들어맞을 때도 한결같이 화형을 당하기 마련이다.” ― 김수영, 「시작노트」, 『김수영전집 2권 : 산문』(민음사, 개정판 2003) 우리 시대 문화는 죽었는가. 대중은 우둔한 것 같지만 어리석지 않다. 여기저기에서 치열하고 즐겁게 숨을 쉬고 있다. 그리고 그 호흡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