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매장 VS 집창촌 └2007 음악일기

목요일 천안에 출장을 가게 됐다. 타도시로 출장을 가면 음반 가게를 탐색하기에 군자금이 필요하다. 말일이 가까워지니 용돈은 떨어지고 없었다.

아내에게 출장 때문에 돈 좀 달라고 하니, “또 CD 사려고 하지”라며 힐끗 쳐다본다.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 여러 핑계를 대어 2만 원을 받아내다. 2만 원 가지고는 미덥지근해 사무실에 출근해 후배 정동이에게 3만 원을 빌리다.

오후, 천안 터미널에 도착하니 일정상의 여유시간이 30분가량 된다. 그 시간 동안 음반가게를 탐색하고 다니다. 하지만 들리는 말은 없어졌다와 모른다가 전부였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이 지역에서 장사를 하신 분이 장소를 알 것 같아 노점상을 찾아 물으니 '야우리'라는 곳에 음반매장이 있단다.

급하게 찾아 가니 S레코드 분점으로, 진열대에 보이는 음반들은 요즘 가수들이 대부분이다. 기가 막히게도 듣고 싶은 가수는 김광석 하나다. 햐, 인연이 안 되는구나 포기하고 천안역을 기약하다. 천안터미널에서 대전 가는 막차가 오후 9시이기에, 시간이 안 맞아 천안역에 갈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세미나에 참석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일처리를 하다. 천안 외진 곳에 있어 서두르지 않으면 대전 가는 기차를 타기가 어려워 세미나 도중에 나와 가까스로 천안역에 도착해 9시 40분 차를 끊었다. 서두른 덕분에 시간이 어느 정도 있어 역 근처의 음반가게를 탐문하고 다니다.

사람에게 물어 보고, 천안역 근처의 번화가를 몇 바퀴 돌았지만 그 어디에도 CD를 파는 곳이 없었다. 인구 50만이 넘는 대도시이고 시내라 불리는 역 근처인데도 음반가게는 전멸했다.

십년 전만 하더라도 음반가게는 작은 동네라도 하나 둘씩 있었다. 이제는 사람이 몰려다니는 상권에서도 음반가게가 사라진 것이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천안역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 내가 돌아다닌 곳은 좌측이었다. 구시장으로 보이는 우측은 조금 어두컴컴하고 아무리 봐도 음반가게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기왕 천안까지 오고 기왕 찾아 나선 거, 건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길을 건너 불빛이 보이는 곳을 돌아다녔다. 생각대로였다. 음반매장은 보이지 않았다.

습기 찬 무더운 날씨 덕분에 몸은 솜 먹은 이불마냥 무겁고 다리에 맥이 풀린다. 그때 누군가 다가온다. “놀다 가유.” 이 한마디를 듣고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았다. 아주머니의 말을 무시하고 천안역으로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몇몇 아주머니가 나를 습격했지만 CDP의 볼륨을 높이고 그냥 걸었다.

천안역 광장에서 땀을 닦으며 허탈한 심정으로 담배 한 대를 무는데 낯익은 글씨가 보인다. “CD 편의점”이라는 글자다. 머릿속이 혼란하다. CD편의점이라니, 정신을 집중해서 쳐다보니 “CD 편의점”이 아니라 “DC 편의점”이다.

내가 돌아도 단단히 돌았구나, 이 더운 날 반나절을 돌아다니고, 이산가족 찾듯 정신을 놓고 CD만 찾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제 시간에 기차를 타고 CDP에 트래비스를 끼운다. 이제 음반이라는 포맷도 사라지는 운명이란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 인류 최초의 직업이 창녀라 하니, 집창촌은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남아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쓴웃음과 과거에 대한 아련한 향수가 치밀어 올랐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게 한 지친 출장이었다.

덧글

  • 요로레히 2007/08/25 12:51 # 답글

    그러고보니 음반가게에 안 간지 꽤 됐네요.
    예전엔 앨범재킷만 보고 뭔지도 모르는 음악을 사기도 했는데, 이젠 그런 낭만은 없어질 것 같군요...
  • 퍼프 2007/08/25 12:59 # 답글

    출장 가실 때마다 씨디샵을 찾아다니시는 여정이 뭔가..
    실례되는 말씀 같지만; 신기한 모험담 내지 오디세이 같은 기분이네요 +_+
    전국의 소규모 음반샵 아카이브 같은 사이트가 생겨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만...
  • 2007/08/25 13:0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조나쓰 2007/08/25 13:30 # 답글

    SK도 씨디 매장 사업에서 손 뗀다 그러고, 동네 작은 매장들은 이미 말할 것도 없고..
    더운 날, 고생하셨습니다.
  • 다이고로 2007/08/25 13:49 # 삭제 답글

    잃으면서 생각난 곡들

    1. A Hard Day' Night - BEATLES
    2. 횡계에서 돌아오는 저녁 - 김현철
    3. 그대없는 거리 - 신촌블루스

    ....매우 쌉쌀우울씁쓸한 포스팅입니다;;;
  • Dilo 2007/08/25 13:50 # 답글

    요즘엔 오프라인 음반가게가 거의 문을 닫았죠...
    그래서 저도 요즘엔 온라인주문에만 의존하다시피 합니다;
  • 음반수집가 2007/08/25 14:19 # 답글

    요로레히 // 예, 예전엔 자켓만 보고도 샀는데... 이제 그럴 공간이 없어지네요. 후~~

    퍼프 // 좋게 말씀해 주셔 감사드립니다. 퍼프님 블로그에 가니 마치 보물을 발견한 것 같다군요. ^^ 자주 놀러가겠습니다.

    비공개님 // 감사합니다. ^^ 답신 드리겠습니다.

    조나쓰 // 그 성의없던 SK마저... 아, 어쩐답니까. 이제 제 별칭도 사라지겠군요. ㅠㅠ

    다이고로 // 선곡 좋네요. 비틀즈에 두 표 던집니다. ㅠㅠ, 빡신 하루였습니다.

    Dilo // 저도 온라인 주문을 주로 합니다만... 가급적 오프라인에서 사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입니다.
  • focus 2007/08/25 15:13 # 답글

    1985년부터 1989년도정도까지 집에서 이대입구에 레코드점을 했었지요..
    당시 LP를 2,500원 정도에 팔았는데 거의 안팔렸읍니다~

    박학기씨가 향기로운추억 들어있는 앨범 많이나가냐고 앨범에 싸인해준것과 들국화1집나왔을때 멤버들 왔다가고..그나마 들국화1집이 제일 잘나간듯하고, 최고 판매는 주현미씨의 쌍쌍파티 테이프 (없어서 못팔았고~) .

    당시 곡목을 적어오면 공테이프에 불법으로 녹음해주던게 그나마
    가게를 이어가는 효자 노릇을 했죠.

    가게는 문을 닫고 화장품가게로 전업을 했고, 언젠가 내가 돈벌어
    한 50지나면 취미삼아 차려볼려 했는데,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10여년후면 씨디도 없어지지 않을런지........

    글잘읽었읍니다. 좋은주말되시길~
  • James 2007/08/25 17:10 # 답글

    음반수집가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나요?
    음악이 너무 고팠습니다, 정말. 입대하고 한 두달은 전혀 몰랐는데, 시간이 흐를 수록 너무 음악이 듣고 싶었습니다.
    책을 보는데 이것 저것 음반을 보고 너무나 사고 싶고 듣고 싶었습니다.
    흑흑. ㅡㅜ

  • 음반수집가 2007/08/25 20:09 # 답글

    focus // 오랫동안 음악을 들으셨군요. ^^ 반가운 말들이 많네요. 특히 "곡목을 적어오면 공테이프에 불법으로 녹음해주던" 추억을 저도 가지고 있습니다. focus님도 좋은 주말 되세요.

    James // 이게 누구십니까. 잘 지내시죠. 후~~~ 그럴때입니다.

    덧글 주신 거 보니 건강하게 지내시는 것 같군요. 제대할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밀린 얘기 나중에 더 나누기로 하죠. 항상 건강하세요. ^^
  • dreamout 2007/08/25 20:11 # 답글

    제가 몇 년 전에 고생한 것을 음반수집가님이 반복하셨군요.. ㅠㅠ
    제가 살던 곳이 천안이었거든요.. 터미널, 역, 그리고 새로 떠오르는 신도심 조차도.. 천안에는 음반매장이 씨가 말랐습니다.
    천안고등학교 근처에 한 개, 터미널 맞은편에 한 개가 있었는데..
    터미널 맞은 편은 문 닫은 것을 확인했고,, 천안고 주변 음반매장도.. 아마 같은 길을 걷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그때 음반수집가님이 느끼셨던 것과 똑같은 감정을 느꼈어요..
    아놔.. 정말 해도해도 너무한다.. 라구요. 그 후론 줄곧.. 인터넷매장.. ^^
  • 꿈의대화 2007/08/25 20:45 # 답글

    제 블로그에서 놀다 가세요

    유후훗;;
  • 음반수집가 2007/08/26 00:01 # 답글

    dreamout // 아 그랬군요. 솔직히 위 글을 쓰면서 천안 분들에게 죄송스러워답니다. 꼭 천안만의 문제가 아닌데, 특정 지역으로만 읽힐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요. 대전도 비슷한데 말이죠. 공감해주셔 감사합니다.

    꿈의대화 // 예, 알겠습니다. ^^
  • bikbloger 2007/10/13 20:34 # 답글

    예전 90년대 초반 춘천에서 학교다닐때... 캠페이지 앞에 있던 양공주 누나들한테 이야기 하면... 미군들한테 이야기해서 CD를 싸게 구해다 주던 루트가 생각나는군요...
  • 음반수집가 2007/10/13 22:32 # 답글

    음~~ 그런 루트도 있었군요. bikbloger님 또한 열정이 읽히네요. 반갑습니다. ^^
  • 꿈을찾아 2007/11/22 00:29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저는 20여년을 천안에서 산 천안 토박이입니다

    물론 20넘어서는 타지생활도 하지만 연고가 천안이라 어쨌든 방학이나 주말엔 천안서 사니까...

    암튼 저도 군대 휴가나와서 씨디살려고 돌아다녔는데 거의 전멸이더라구요.

    2000년대초만해도 그 역전에 하나있고 중앙고쪽에 하나있었는데,

    지금은 일단 야우리 지하에 있고, 천안 외곽지역...직산인가 성환인가 그쪽에 하나 있는걸로 알고있고, 제가 휴가나올때마다 이용하는곳은 신도시지역인데, 거기도 두정동인가...?? 암튼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는데 두정역에서 시청가는 길 중간쯤... 두정전철역에서 쫌 더 벗어나면 조그마한 레코드가게가 있습니다. 거기서 요즘 몇번 씨디를 샀습니다.

    참고됐으면 좋겠네요^^ 전 이제 사고픈거 왠만하면 거기서 살려구요.
  • 음반수집가 2007/11/26 18:18 # 답글

    참고됐습니다. 다음에 천안 들리면 꿈을찾아님이 말씀하신 루트를 밟겠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